정답은 나왔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 본질과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사업자들이 클린 마케팅으로 거둬들인 수익을 투자를 통해 고용창출에 사용해 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31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였다. 이날 정통부는 현안에 대한 여러 해법을 내놓았다. 정책의지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나 오랜 만에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
일단 정부의 ‘강공’에 SK텔레콤은 뜨끔할 것이다. 119억원의 과징금은 만만치 않은 액수다. 게다가 합병 인가조건 이행 여부에 대해 줄줄이 사족을 달았다. 신세기통신을 인수한 것이 무슨 원죄처럼 굴레를 씌웠다. 앞으로 경영 활동 전반에 규제의 그물이 쳐졌다. 삐끗하면 감독당국의 칼이 다시 날아들게 생겼다. “이런 판에 기업 뭐하러 하나”는 푸념이 나올 수 있다.
KTF와 LG텔레콤은 불만족스러울지 모른다. 보조금 제재는 물론이고 SK텔레콤의 ‘영업정지’를 외쳤다. 하지만 소득도 있다. 통신위와 정책심의위의 판단이 ‘현재 진행형’이다. 향후 이보다 더한 제재가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SK텔레콤에 대한 공세는 다양한 변수를 남겼다는 점에서 ‘일단 유보’다. 게다가 지원책도 얻어냈다. 전파사용료, 접속료, 보편적 역무부담금 등에서 SK텔레콤 부담주기에 성공한 것 같다. 무엇보다 정부의 차별적 지원이라는 정책의지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다.
정부의 결정은 절묘함마저 느끼게 한다.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이해당사자 어느 한 쪽도 드러내 놓고 반발할 수 없도록 ‘수위’를 정확히 지켰다는 느낌이다. 이미 한 자락이 깔려 있는 SK텔레콤으로서는 ‘눈치보기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KTF나 LG텔레콤으로서도 정부의 ‘성의(?)’를 무시하다가는 역풍이 우려된다. 앞으로 행보에 전략적 고려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사업자 모두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다. 보조금 지급에 관한 추가 제재 여부다. 통신시장 경쟁체제 도입 이후 보조금 문제는 영원한 숙제다. 한두 번 당해보는 것도 아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SK텔레콤뿐 아니라 KTF, LG텔레콤 모두에 해당한다. 더구나 최근의 공기는 심상치 않다. 과징금 물려봐야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아예 이참에 뿌리를 뽑겠다며 ‘극약처방설’도 나돈다. 영업정지라는 ‘레드카드’를 내민다는 것이다. 현실화된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업자 공히 엄청난 타격이다.
이런 사정을 짐작했는지 자정움직임도 눈에 띈다. SK텔레콤이 앞장서 클린마케팅을 주창했다. 여타 사업자들도 공감한다. 결의도 다졌다. 전술적 제스처일지라도 이번만은 믿고 싶다. 또 다시 종래의 사례(과거에는 업계 스스로 자정선언을 손바닥 뒤짚듯 바꾸었다)를 되풀이하기에는 여유가 없다. 주가는 바닥이고 수익은 늘어나지 않는다. 공멸의 길인 줄 알면서도 출혈 마케팅 경쟁을 하는 사업자는 시장이 ‘정리’해 줄 것이다.
야단칠 것은 쳐야 한다. 규칙을 어긴 사업자에겐 냉정한 심판이 필요하다. 하지만 ‘판을 깨지는 말아야 한다. 가뜩이나 내수는 최악이다. 사업자에 목매고 있는 중소 휴대폰업체와 콘텐츠업계는 아우성이다. 장비업계는 투자 부진으로 ‘해고’가 일상화됐다. 과징금 물리고 영업정지 하는 대신 투자를 담보하도록 하자. 수백억원 과징금이야 고스란히 정부 금고에 들어간다. 전후방 산업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투자와 고용에 무슨 도움이 되나.
벌 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징벌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은 여럿이다. 전자산업 투자는 통신사업자가 이끈다. 이들에게 부과할 징벌을 투자와 고용으로 대체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을 따져 봐야할 시점이다. 사업자도 살리고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윈윈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진 장관의 말은 그래서 무게가 더해진다.
<이택 편집국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