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미로 속의 통신시장

 워낙 어이없는 일에 익숙한 사회지만 최근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다. 행정수도 이전에, 박근혜 패러디 파동이 겹치더니 해군 보고 누락 사건과 친일진상규명법 갈등이 곧바로 이어졌다. 여기에 아파트 원가공개와 경기 논란이 가세했다. 급기야 희대의 엽기살인마까지 등장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도 많다 보니 국민들로서는 어지러움증을 호소할 지경이다.

 요즈음은 통신판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부터 한 번 보자. 얼마전 삼성은 하나로통신(하나로텔레콤) 지분을 SK텔레콤에 넘겼다. LG와 외국자본의 경영권 전쟁 당시 삼성은 LG의 구애를 뿌리쳤다. 주당 제시 가격이 너무 낮다는 이유였다. 결국 하나로는 외자가 장악했다. 그랬던 삼성이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LG 제시 가격보다 더 싼 값으로 SK텔레콤에 팔아 치웠다. 돈이 급한 것 같지도 않은 삼성의 행보는 일반인에게 의아할 뿐이다.

 LG도 비슷하다. 통신을 그룹 핵심축으로 삼겠다며 기세를 올리던 시절과는 너무 다르다. 하나로통신 인수 실패 후에는 통신을 하겠다는 것인지, 손을 떼겠다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그룹과 계열사들은 여전히 따로 국밥이다. 생존투쟁에 매진하는 LG텔레콤과 데이콤은 다급함이 역력하다. 이런 판에 툭하면 ‘통신 철수론’이 튀어 나온다. 마타도어라 치부하면 별 문제이지만 시장도, 국민들도 헷갈리긴 마찬가지다. 하나로통신의 또 다른 당사자 외자 역시 궁금증 해소 대상이다. 이미 한솔PCS에 투자해 천문학적인 투자수익을 거둔 바 있는 이 외국계 펀드는 하지만 아직 별무성과다. 이 펀드의 ‘솜씨’를 익히 알고 있는 개미투자자들은 이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말한다.

 단말기 보조금쪽으로 옮겨 가면 방정식이 한 차원 높아진다. 보조금 지급-통신위 규제-사업자 클린마케팅 천명-다시 보조금 지급이라는 공식은 철옹성이다. 지난 수년간 어쩌면 그리 똑같은 ‘영화’가 똑같이 ’재방영’되는지 알 수가 없다. 사업자에겐 보조금규제가 천형(天刑)으로 작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부가 무능해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인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여기에 새로운 변수까지 등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업자의 클린마케팅이 담합소지가 있다며 달려든 것이다. 이쯤 되면 사업자는 고사하고 소비자들도 어이가 없어진다. 통신사업자들의 맷집을 시험한다면 모를까.

 4년 만에 타결된 DTV 방식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사회적 갈등을 토론과 협의를 통해 해결한 사례”라고 치하했지만 뒤돌아 울고 있는 쪽도 있다. DTV 표준이 과연 경제 사회적으로 4년을 허비할 만큼 가치있는 갈등이었는지 되묻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정부와 방송관계자들이 똑같이 국민과 산업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그간의 진행은 달랐다고 비판한다. 오히려 국민과 기업은 뒷전이고 이해당사자간 밥그릇싸움, 세력투쟁의 장으로 변모한 이해할 수 없는 갈등이라고 지적한다.

 통신요금은 아예 미로(迷路)수준이다. 정부는 걸핏하면 물가관리 차원에서 요금인하를 압박한다. 힘없는 사업자들은 울며 겨자를 먹는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정부와 여당의 잣대다. 그런 논리라면 휘발유 값, 전기요금, 지하철 요금, 상하수도 요금도 내려야 한다. 어차피 아파트 값 내린다고 원가공개까지 추진하던 정부 여당이다.

 갈수록 정치판 닮아가는 통신판의 ‘이해할 수 없는 일 시리즈’가 어디까지 계속될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