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이동통신서비스 3사가 한시적이나마 MP3폰에 적용해 온 MP3파일의 무료 재생기간 제한 조치를 모두 풀어버렸다. 그러자 그 기간을 72시간으로 제한하자는 데 합의해 준 MP3 음원권리자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라며 법적대응을 불사하고 나섰다.
이동통신사들은 처음부터 음원권리자들의 재생기간 제한 요구를 터무니없어했다. 소비자가 MP3폰을 구입하는 것은 자신이 소유한 MP3파일을 즐기려는 것인데 이걸 불법복제라는 이유로 제한하자는 것은 소비자 권익을 무시한 처사였다는 것이다. 소비자단체들도 똑같은 MP3파일 미디어인데 MP3플레이어는 관두고 왜 MP3폰에만 제동을 거느냐며 이동통신사의 주장에 힘을 실어왔다.
그렇다면 음원권리자들은 ‘재생기간 제한’이나 ‘불법’이라는 주장을 이동통신사나 소비자에게 강제할 수 있는 근거를 갖고 있는가. 문제는 이게 좀 모호하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근거가 있다고 할 수도, 없다며 내버려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소비자가 소유한 파일을 모두 불법복제로 간주하는 것도 논리상 오류가 있어 보인다.
이동통신사가 음원권리자들과 합의를 파기하고 무료 재생기간 제한조치를 풀어버린 것도 설득력이 약하긴 마찬가지다. 현행법 어디에도 저작권을 가진 MP3파일의 무제한 재생을 허용하는 조항이 없다. 물론 무제한 재생을 금지하는 조항도 없다.
고민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우선 이동통신사들이 겉으로는 소비자 권익보호를 내세우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고객이탈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다. MP3폰이 카메라폰에 이어 새로운 킬러앱으로 등장한 마당에 어느 회사는 서비스가 가능하고 어느 회사는 불가능하다면 고객이탈은 뻔한 일이다. 음원권리자들 역시 MP3폰에 대한 권리마저 놓치면 MP3로 대표되는 디지털음악시장에 대한 타격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두 당사자 모두 손을 놓고 마냥 저작권법 개정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장은 성숙돼 가는데 언제 이루어질 지도 모를 법개정을 기다리는 것도 그렇거니와, 개정이 된다 해도 모두를 만족시키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동통신사나 음원권리자 모두는 그래서 더욱 답답하다. MP3폰에 승부를 걸겠다고 나선 양자는 서로 미디어와 콘텐츠를 주고받는 동반자이자, 동업자 관계다. 아직은 나누어 가질 몫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마당에 나누는 조건만을 따지다가 척을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저런 것을 감안해 보면 이번 두 동업자의 결정은 독한 마음을 먹거나 멀리 내다보고 내린 것은 아닌 듯싶다. 게다가 이번 사안이 무조건 거부한다고 해서 실익이 돌아오거나, 제동을 건다고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권위와 도덕성을 가진 중재자는 이럴 때 빛을 발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이 상한 두 동업자를 다독거리고 거리를 좁혀줄 매개체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앞서서도 정부에 의한 중재는 있었다. 72시간 제한 조치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 때는 자리만 만들어 주었을 뿐 권위가 서질 않아 이해관계자가 도중에 이탈하는 등의 혼란이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번 이동통신사들의 재생제한 조치 해제로 나타난 것이다.
이동통신사와 음원권리자 모두는 이제 진정한 중재자를 찾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이것은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재자는 권위와 도덕성만 겸비한다면 소비자 단체이든 공공기관이든 구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서현진 디지털문화부장 jsuh@ent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