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반도체산업 역사상 기념비적인 일이 있었다. 엠텍비젼이라는 비메모리반도체업체가 한해가 다 가기도 전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매출 1000억원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국내 비메모리반도체산업의 현실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얘기다. 한국의 비메모리반도체업체들이 연간 100억원의 매출을 넘어서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대부분은 20억원 내지 30억원이 고작이다. 실상이 이같은데 시스템온칩(SoC)이 차세대성장동력으로 선정된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현실과 이상이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비메모리분야에서 매출 1000억원 돌파 기업 탄생의 의미는 우리의 이상이 비현실적인 꿈이 아니라는 점을 비로소 입증해주었다는 것이다. 엠텍비젼은 양적으로 고만고만한 국내 비메모리업체 30여개를 합친 규모의 매출을 혼자서 달성했다. 뿐만 아니다. 질적으로도 엠텍비젼의 제품과 기술은 카메라 컨트롤러분야에서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더욱 반가운 것은 앞으로 제2, 제3의 엠텍비젼이 매출 1000억원 돌파에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엠텍비젼이 앞선 기술력으로 지속적인 탄력성장을 계속하고 제2, 제3의 업체들이 그 뒤를 계속 따른다면 이 분야가 한국의 먹거리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메모리는 30%밖에 안되지만 나머지 70%는 비메모리다.
더 더욱 뜻깊은 것은 비메모리산업의 발전이 세트산업을 살 찌운다는 점이다. 디지털TV도 이젠 XD엔진이나 DNIe 같은 비메모리칩에 경쟁력이 달려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하는 것이다.
급성장하고 있는 국내 비메모리업계의 숙원은 안정적이고 경쟁력있는 파운드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지금 비메모리 팹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하이닉스, 동부아남은 이들에게 결코 좋은 파트너가 되기 힘든 구조다. 이들의 팹에는 이미 세계적인 메이저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국내 벤처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를 불안감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지금 몇몇 비메모리업체는 자금을 갹출하고 주문을 몰아주는 방안까지 거론하며 새로운 파운드리 설립방안에 고심하고 있다. 파운드리가 몇몇 중소 업체의 힘으로 쉬 만들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얼마나 답답했으면 계란으로 바위를 깨트리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을까.
이제 정부가 나설 때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황무지에다 꽃을 심고 있는 이들에게만 모든 짐을 지울 수는 없다. 정부가, 아니 우리 모두가 이들과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윈윈할 수 있는 파운드리의 주인공을 앞장서서 물색해내야 한다.
생각해보면 방법은 많다. 가능하다면 이들과 운명을 함께 할 국내 자본이라면 더 좋다. 국내에서도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으려는 자본이 꽤 있다. 비메모리업계도 십시일반 자금을 끌어 모을 준비가 돼 있다. 믿을 만한 주인만 나선다면 채산성을 확보하도록 주문을 몰아주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굳이 국내 자본만을 고집할 이유도 없다. 국내 비메모리산업과 파운드리의 가능성을 믿고 투자할 해외 자본도 찾아 보면 없진 않을 것이다. 굳이 공장이나 R&D쪽으로만 외자유치를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매력있는 파운드리 합작을 내세워 외자유치를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나서야 할 이유는 또 있다. 파운드리 설립이야말로 비메모리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일구어 내고 취약한 메모리 일변도의 국내 반도체산업을 반석위에 올려 놓는 시발점이다.
정부가 나서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주어야 한다.
유성호 디지털산업부장@전자신문, sh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