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이공계 전문인력의 사무관 특채 원서 접수가 시작됐다. 성급한 전망이지만 정부 고위관계자는 “1만명쯤 지원할 것”이라고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물론 그의 말처럼 1만명이야 희망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까지 이어질 지원자 수를 보면 현 우리사회의 이공계 문제를 어림잡기에 충분하다.
정부는 지난 8월 이공계출신으로 박사학위나 기술사 자격증을 소지한 우수 과학기술인력 53명을 사무관으로 특채, 각 부처의 정책부서에 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합격자를 가려낸다. 더욱이 시행 평가가 좋으면 올해에 그치지 않고 해마다 비슷한 규모의 특채제도를 정례화한다는 방침이다. 사무관은 행정고시나 기술고시 등 고시에 패스한 후 공직에 첫발을 내딛는 계급이다. 고시 합격 없이 사무관이 되려면 꽤 오랜기간 초급관료 생활을 해야 한다. 극히 예외적 케이스로 외부 영입인물에게 사무관직을 부여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이건 고시를 통과하지 않고도 한 해에 50명이 넘는 인력이 사무관으로 특채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쯤되면 이번 특채의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참여정부 ‘최강의 개혁정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인사 제도는 필연적으로 가장 보수적 성격을 갖는다. 아무리 이공계 해법이 다급하다 해도 이런 제도를 과감히 실행하는 것은 혁명기 아니면 곤란하다. 기득권층의 저항과 반발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를 입안하고 밀어붙였던 전·현직 청와대 과기보좌관 김태유씨와 박기영씨의 뚝심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이 많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무튼 이 엄청난 개혁은 성공해야 한다. 그러려면 과거사례를 되짚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사무관 특채가 집단적·제도적으로 시행된 적이 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들도 고시를 거치지 않고 해마다 상당수 중앙부처 사무관으로 특채됐다. 군사문화가 지배하던 당시의 정권 분위기에서 그 같은 제도는 곧바로 군 출신에 대한 특혜로 비쳐졌다. 비록 육사 출신들의 개인적 역량이 우수하고 공직에 대한 사명감이 불탔더라도 ‘특혜’라는 여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게다가 집단적 특채는 권력자의 통치기반 강화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덕분에 그들은 ‘유신(維新)사무관’으로 불리면서 공직사회 착근에는 실패했다. 남은 것은 우수한 젊은 인재들의 실패와 공직사회의 상처뿐이었다.
물론 이공계 특채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정통성 없는 대통령의 통치기반용도 아니요, 집권세력의 인력 충원방식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21세기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뿐이다. 누군가는 해야 했지만 아무도 못했던 일이다. 박수를 보내고 격려해야 할 일이다.
이번 제도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인재를 엄선하고, 선발된 이들은 남들보다 두배 세배 노력해야 한다. 배타적 관료사회에 적응해야 하고 새로운 시각과 비전도 보여줘야 한다. 아마도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입신하는 것보다 훨씬 고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지 모른다. 정부의 배려도 좀 더 세심해야 한다. 교육훈련과 배치는 고려하되 기존 관료들로부터 ‘특혜’라는 뒷말이 나오면 모든 것이 원점이다.
이공계 박사급이라면 개인 경쟁력에서도 결코 고시 합격자에 뒤질 것 없다. 스킬과 행정적 전문성은 본인의 노력여부에 따라 갈린다. 기존 관료들 역시 이들을 ‘무임승차’한, 견제해야 할 존재로만 인식하지 말고 자극을 주는 경쟁자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을 포함한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국민의 애정과 관심이다. 이번 제도는 단순히 이공계 해법 차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