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일본의 실험

최근 일본에선 우정사업 민영화와 공공 서비스의 민간개방 문제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우정사업 민영화나 공공 서비스의 민간개방(‘시장화 테스트’=관·민경쟁입찰)은 일본사회가 열망하고 있는 사회변혁 의지와 구성원 간 갈등 수준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있다.

 특히 ‘일본식 금융사회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는 우정사업 부문의 민영화는 메이지 유신 이후 100여년 이상 지속된 우정조직의 물리적 해체라는 점에서 향후 일본 관료 사회와 금융시스템 전반에 격랑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정사업 민영화는 현재의 우정공사를 2007년 4월에 우편사업·우편저금·간이보험·창구업무 등을 전담하는 4개 자회사로 분할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2017년까지 우편저금과 간이보험 등 금융부문을 민간에 매각한다는 게 기본 골자다. 이에 대해 일본의 고질적인 관치 금융시스템이 종지부를 찍고 드디어 시장경제 체제로 본격 이행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평가는 우정사업의 특수성과 역사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대대적인 수술을 앞두고 있는 일본 우정공사는 28만명의 직원이 일하는 일본 최대의 관료조직이자 3조3000억달러의 금융자산을 자랑하는 일본 최대 금융기관이다. 일본 전체 금융자산의 4분 1이 우정공사에 집중되어 있고 일본 가구의 85%가 우정저축에 가입하고 있는 것만 봐도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금융 자산은 1조2844억달러에 달하는 일본 국채(JGB)를 보유하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 정부의 자금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우정공사는 다른 금융 기관보다 훨씬 저렴한 금리로 각종 정부 정책 사업이나 기업에 자금을 대출해 주고 세금 감면 및 정부 보증 혜택을 누린다.

 하지만 우정공사에 기반을 둔 일본 고유의 관치금융 시스템은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지만 자금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를 전반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어 현재와 같은 금융 부실을 낳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일본의 금융시스템을 ‘금융 사회주의’라고 폄하하는 것도 절대 과장된 얘기가 아니다.

 고이즈미 정부가 정치생명을 걸고 이 같은 거대 관치금융조직에 메스를 가한다는 것은 일본 사회와 관료조직에 충격을 던져줄 게 분명하다. 벌써부터 고이즈미 정부가 지나치게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으며, 공무원 신분을 상실하는 우정공사 직원들과 관치금융의 핵심 고리를 형성해온 재무성 등 관료들의 반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우정사업 민영화와 함께 일본 정부가 검토중인 공공서비스의 ‘시장화 테스트(관·민경쟁입찰)’도 수면 아래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관·민경쟁입찰은 고이즈미 수상 자문기구인 규제개혁·민간개방추진회의가 2006년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데, 세금징수·지폐제조 등 공공 서비스를 정부 기관과 민간업체가 입찰을 통해 수주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이즈미 정부는 공권력의 성역으로 여겨지던 공공 분야에 시장의 원리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시장화 테스트 대상에는 국세·지방세 등 세금징수 업무, 정부 청사 시설의 정비 및 관리, 자동차등록·특허 등록·등기 등 등록업무, 통계작성·동식물 검역·전파감시·항공관제 등 정부 공공 업무를 총망라하고 있다. 벌써부터 이에 대한 관료사회의 저항이 극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자민당의 규제개혁위원회조차 “추진회의는 현장을 모르는 연구회에 불과하다”며 폄하하고 있다.

 사회를 변혁한다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겠지만 고난과 역경의 점철 과정이다. 이념과 이해관계의 충돌로 개혁주체세력이 당초 의도했던 사회개혁은 혼미를 거듭하고 본말이 뒤바뀌는 게 다반사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영 기업의 민영화나 시장화 테스트가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장길수 국제기획부장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