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대덕전문연구단지관리본부(이하 연구단지본부)가 발표한 소식은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에게 신선함과 함께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중국이 과연 이 정도로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는가 하는 느낌과 함께.
발표내용은 이랬다. 조만간 중국 최대 가전회사 하이얼이 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단지본부 등과 함께 대덕단지 내에 내년부터 3년간 300억원을 투자해 R&D센터를 설립한다. 우리가 개발해 줄 기술은 △중국·미국·일본 유럽시장 등을 타깃으로 한 40인치 이하의 LCD △슬림형 브라운관(CRT) △PDP원가절하 방안 △셋톱박스 등이다.
발표 내용을 접하고는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도 놀라움이려니와 그 배경과 주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한 것은 발표 다음날 그 모든 핵심기술의 주체인 ETRI가 “일부 매체에 기사화된 ETRI와 중국 하이얼사와의 MOU교환 및 공동연구관련 내용은 ETRI 측에서는 전혀 검토된 바 없는 사실”이라고 부인했다는 점이다.
관련자들이 밝히는 저간의 사정을 재구성해 보면 이렇다.
대덕의 모 인사는 지난 8월 하이얼코리아와 친분있는 인물을 통해 대덕연구단지 내에 차세대TV관련 연구센터 설립 요청을 받고 ETRI 측 인사와 함께 하이얼 측과 협의에 들어갔다. 이를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연구단지관리본부가 기습적으로 모든 일을 매듭지으며 각 언론사에 발표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나 기관의 어느 누구도 몰랐던 모양이다.
궁금한 점은 누가, 왜, 이런 방식으로 글로벌 시장 경쟁상대에게 우리의 성장엔진기술을 주면서까지 ‘기를 쓰고’ 연구소를 유치하려 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왜 우리나라 R&D의 총본산이라 할 대덕연구단지 소유의 첨단기술이 주무부처도, 해당기관장도 모른 채 외국기업에 이전하는 작업이 진행돼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장루이민이라는 걸출한 CEO가 이끄는 하이얼사의 R&D센터를 설립하는 문제에 대해 단순히 기술제공의 문제만 생각할 수는 없다.
중국의 기업들은 오늘도 우리가 확보한 디지털TV관련 첨단기술을 개발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이 마당에 연구센터 유치라는 명목을 들어 그렇게 쉽사리 수년간 쌓아온 기술을 이전할 통로를 놓아준다는 점을 누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기술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때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올 기술을 이렇게 손쉽게 어떤 공식적 검증절차도 없이 넘겨주는 기업이나 단체나 국가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당장 우리나라가 향후 10년간 뭘 먹고 살지?라고 걱정할 때 최소한 5년 이상은 걱정없다고 자신할 분야가 바로 디스플레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개발한 기술은 연구단지 내 소수 인사가 함부로 주무를 수 있는 개인적 재산이 아니다. 거기에는 국가가 전략적으로 키워 온 국가 미래의 희망과 이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 온 연구소와 기업연구원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다. 그리고 기꺼이 세금을 내며 연구원들에게 힘을 싣고 지지해 준 국민의 기대감과 희망도 녹아 있다.
이번 발표와 향후 행보가 혹 대덕R&D특구 조성 논란을 서둘러 봉합하기 위한 차원은 아닌지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는 기술과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섣부른 R&D유치 발표에 대한 배경과 의문은 밝혀져야 한다. 이재구 경제과학부장@전자신문,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