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기업이 국가대표다

 ’상품이 국가대표’

 인도를 국빈방문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4일 뉴델리 임페리얼 호텔에서 동행한 경제인들과 가진 만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는 노 대통령이 지난번 러시아 방문시 모스크바의 한국기업 광고판을 보고 “외국에 나와 보니 ‘기업이 바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데 이어 나온 것이다. 모스크바를 방문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모스크바에서 삼성과 LG의 광고판이 아주 자연스럽게 거리의 풍경을 이루고 있음을 기억하게 된다.

 노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기업이 바로 나라’라고 말한 데 이어 이번 인도방문에서 ‘상품이 국가대표’라고 언급한 것은 새삼스러운 것 같지만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동안 ‘국가대표’인 상품을 만드는 주체인 ‘기업’이 실제로 국가대표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60년대 초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후 우리의 산업이 일정 궤도에 들어서기까지 기업에 대한 정부의 역할과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수출노하우도 별로 없고 기업인들의 역량도 절대적으로 부족해 우리 기업들로서는 ‘정경유착(政經癒着)’이라는 불공정 관행에 매달려 온 게 사실이었다.

 우리가 경제개발을 시작할 시점인 지난 63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소니의 공동 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의 일화는 기업가 정신과 국가위상 간의 함수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 앞에서 항상 경제의 방향타 역할(?)을 했던 일본업체 가운데 소니의 일화는 한번쯤 기업의 역할과 국가위상에 대한 기여도를 다시 한 번 생각케 한다.

 모리타 회장은 뉴욕 5번가에 정착, 소니 아메리카를 만들어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 소니를 만드는 씨앗을 뿌렸다. 그는 정계·재계·예술계의 세계적 거물들과 두터운 교분을 쌓으면서 일본의 국가브랜드 가치까지 높였다. 그의 가족 모임에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참석할 정도였고 후임 오가노리오 현 명예회장은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교류할 정도였다.

 이들은 이미 80∼90년대에 피터 버 컬럼비아영화사 회장, 스티븐 스필버그, 신디 로퍼 등 세계적인 예술가 연예인과도 교분을 쌓고 그 영향력과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그의 자녀는 항상 학교에서 신기한 물건을 가져오는 아이들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물론 그 제품들은 소니가 시제품으로 만들어 낸 제품이었고, 소니아메리카 지사장의 자녀들은 미국인에게 곧 일본이었다.

 이제는 기업역량이 성숙해져 어느 기업이 됐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면 직접 전세계 소비지로 진출해서 제조·마케팅·판매까지 도맡는 시대가 됐다.

 대통령이 세계 최고의 ‘국가대표’를 언급한 시점에 국가가 기업에 무엇을 도와줘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무엇보다도 기업의 기(氣)를 꺾지 말아야 한다. 정부의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해 창의적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그 대표적 방법이 될 것이다.

 최근 휴대폰, LCD TV, PDP TV 등 세계적 기술력을 가진 국가대표 상품을 몇개씩 갖고 있는 삼성전자가 경영권 방어에 고심하고 있다는 소식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정부가 내건 ‘2만달러시대 달성’은 이 같은 핵심기술을 가진 기업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 부국으로 가자는 의지가 아니었던가. 특히 “10년 후를 내다보자”는 국가적 화두를 내던지고 기업과 국민과 정부를 각성시키면서 한국을 이끌고 있는 대표기업의 경영권조차 외국기업에 넘어갈지도 모를 상황에 처해 있다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더해 준다.

  이재구 경제과학부장@전자신문,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