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시장 구조조정은 수 년 째 말로만 그쳤다. LG가 제3의 축이 되는 방안, SK텔레콤이 유선망에 진입하는 방안, 적절한 매수자가 없으면 KT가 규제를 떠안고 사들이는 방안 등이 때마다 거론됐지만 모두 무산됐다. 채권단과 매수자들간, 유무선 사업자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거나 정책당국인 정통부의 이렇다할 의지 표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전체 유선사업자의 수익성은 악화됐다. 유선사업자의 성장 모멘텀 찾기가 절체절명의 과제로까지 떠오른 가운데 재개된 두루넷 인수전은 향후 유선시장은 물론 전체 통신시장의 구조조정의 키를 누가 쥐게되느냐를 판가름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통신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그러나 과거와는 몇가지 다른 양상을 보였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하나로텔레콤이 모두 11억 달러의 외자유치에 성공해 인수여력을 갖춘 것. 두 차례 두루넷 인수에 실패했던 것과 달리 “충분한 자금력과 두루넷 직원의 고용승계”까지 약속했다. 두루넷 직원들도 은근히 하나로가 키를 쥐길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하나로의 세력 확장이 결국 전략적 투자자에 지분을 넘기는 외자의 이익실현을 전제로 한다는 시각이 하나로의 발목을 잡는다. SK텔레콤도 하나로가 유선시장의 유일한 견제세력으로 성장해 키를 쥐는 게 부담스럽다. 하나로는 “외자측이 두루넷과 와이브로에 모두 투자할 경우 오히려 탈출이 어려워진다”며 “외자측은 장기적인 구상을 하며 따라서 통신시장 구조조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데이콤도 1년전과는 분명히 달라졌다. 강력한 의지표명이 눈에 띈다. 두루넷으로 소매업진출의 전기를 만들지 못하면 퇴출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데이콤이 두루넷을 인수해 구조조정의 키를 쥐면 3개 사업자군의 유무선통합 경쟁구도 육성과 융합서비스 규제완화가 뒤따라 정책적 시너지가 더해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적지 않다. “데이콤이 인수하는 게 유선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길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SK텔레콤도 데이콤의 도소매시장 자리매김으로 유선시장의 경쟁국면이 지속되면 유선확보전략을 느긋하게 가져갈 수 있다.
데이콤의 두루넷 인수의지를 곧 LG의 통신3강 의지로 볼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과거 LG의 두루넷 인수가 통신 3강의 한 축으로 LG가 자리잡는다는 의미였다면 지금은 데이콤의 독자생존 전략차원의 접근이 강하다는 것. 그만큼 외자유치안의 현실성에 궁금증이 더해졌다. 데이콤이 추진중인 외자유치에도 그룹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양측 모두 절박한 게임이 되면서 업계 전문가들은 ‘누가’보다 ‘어떻게’가 관건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두루넷의 가치에 대해 정확한 평가가 없는 상황에서 인수가 곧 구조조정의 키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인수가격과 인수 이후 가입자 유지전략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결국 인수 이후의 전략에 따라 구조조정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