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절차가 워낙 복잡한데다 투표방식도 천공카드·OCR카드·전자투표 등으로 나누어져 있어 관전자 입장에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대선에선 특히 ‘e보우팅 시스템’으로 불리는 전자투표방식이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지난 2000년 대선 당시 재검표 소동으로 곤욕을 치렀던 플로리다주를 비롯해 조지아·메릴랜드·네바다 등 29개 주가 전자투표방식을 도입할 예정인데, 전체 유권자의 30% 정도가 전자투표방식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것이란 예측이다. 전자투표가 성공적으로 운용된다면 인터넷 선거제도 도입 등에 한발 다가설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의 의미는 상당히 크다.
전자투표 방식은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에도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특히 첨단기기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이 전자투표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전자투표를 도입한 지역의 젊은 층 투표율이 높을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워세스터 폴리테크닉 인스티튜트(WPI)가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8∼34세의 젊은 유권자 중 62%가 전자투표를 선호한 데 반해 65세 이상 노인층은 31%만이 전자투표에 호감을 보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자투표의 신뢰성 문제를 놓고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어 문제다. 현재 전자투표시스템은 디볼트, 세쿼이어, ES&S 등 업체들이 공급한 것인데 해킹과 조작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지난 2000년 대선 때 뉴멕시코주 투표 결과를 한 언론사가 재검표한 결과 700표 정도의 오차가 전자투표시스템에서 발생한 것이나 작년 인디애나주에서 실시된 한 선거에서 유권자수가 터무니없이 부풀려져 전자투표시스템의 신뢰성에 먹칠을 하기도 했다. 최근 세쿼이어가 캘리포니아주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전자투표를 시연하는 자리에선 스페인어로 표시된 표가 제대로 집계되지 않는 사건이 발생, 비판적인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사실 이 같은 사고는 프로그램상 오류여서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다. 진짜 걱정스러운 것은 해커들이나 시스템 공급업체의 관계자가 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투표를 조작하거나 소스코드를 변경하는 행위다. 거기다 현재 전자투표시스템은 종이 형태의 투표지를 출력하지 않기 때문에 투표결과에 불복, 재검표에 들어갈 경우 검증절차가 미흡하다는 중대한 하자를 갖고 있다. 또 유권자가 자신의 표가 전자투표시스템에 제대로 저장되었는지 직접 확인하는 절차가 없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처럼 시비가 그치질 않자 ‘과학의 진보를 위한 미국연합체(AAAS)’라는 단체는 현행 전자투표시스템의 보안성과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발생의 소지가 있다며 종이 추적이 가능한 전자투표의 도입을 권고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결국 박빙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번 대선에서 재검표 소동이나 법정 싸움이 발생할 경우 전자투표시스템은 중요한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첨단기능을 완비한 전자투표시스템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유권자·정당원·선거 감시원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신뢰성 문제를 제기한다면 전자투표는 언제 큰 재앙으로 번질지 예측하기 힘들다. WPI조사에 따르면 지난 선거에서 재검표 소동 끝에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던 민주당원들의 전자투표에 신뢰도가 공화당원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전자투표의 앞날이 결코 밝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국제기획부 장길수 부장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