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정보통신부와 KT-SK텔레콤의 관계는 이혼한 부부를 연상시킨다. 살 섞고 같이 살다 헤어지면 오히려 적대적 감정이 증폭되기 십상이다. IT한국 통신신화를 함께 이뤄냈던 이들 3자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다. 정부는 1등 기업들이 정책을 외면한다며 섭섭함을 숨기지 않고 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투자를 늘려 달라고 해도 ‘제 잇속 찾기’에만 혈안이라며 불만이다. 기업들은 정부가 아직도 관 주도의 논리에 매몰된 채 시장을 무시한다고 반박한다. 기업 및 주주가치와 충돌하는 정책이라면 자사 논리가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큰 틀에서 각을 세우다 보니 사소한 인간관계까지 훼손되는 사례도 엿보인다.
이런 탓인가. 그간 경쟁 관계만 부각됐던 KT와 SK텔레콤이 최근에는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어 화제다. 우선 이들 기업은 지난주 꽤나 양호한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KT는 3분기에만 거의 3조원의 외형에 순이익은 3103억원이었다. 매출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이익 성장폭은 컸다. SK텔레콤은 매출 2조4343억원에 이익은 3955억원으로 양쪽 모두 신장세가 뚜렷했다. 이들의 성적표는 초일류기업이라 불리는 일본의 NTT도코모를 앞선다. 도코모의 지난 4∼6월 분기 실적은 모조리 작년 동기대비 마이너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칭찬보다는 ‘지적사항’에 몰두하고 있다. 주가도 횡보를 거듭한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성장 모멘텀의 부재를 꼽는다.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해야 하지만 분명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간의 인프라와 지배력으로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매출, 이익은 보장되지만 발전 가능성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규제 리스크가 보태진다. KT건 SK텔레콤이건 신사업 도전은 기득권을 바탕으로 한다. 성공의 지름길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정부가 걸린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신사업은 대부분 불공정 경쟁 논란을 야기한다. 어떤 방향이든 독점력 강화를 스크린해야 하는 게 정부다. 요금을 앞세워 후발주자들을 ‘보내버리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지만 정부가 가만둘 리 없다. 이 때문에 KT와 SK텔레콤은 마케팅이건 신사업이건 운신의 폭이 좁다. KT와 SK텔레콤을 둘러싼 환경은 ‘썰물기’다.
그래도 한 번 따져보자. 성장 동력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전세계 통신, 아니 IT시장의 트렌드다. KT엔 상품 하나로 조원 규모를 벌어들이는 일은 메가패스가 마지막이다. SK텔레콤 역시 TTL 같은 히트상품이 다시 나오긴 어렵다. 압축성장, 폭발성장에 익숙한 시각으로 지금의 통신시장을 해부하면 곤란하다. 연평균 50% 이상의 매출과 수익 신장을 기록했던 것은 과거에나 가능했다. 성숙·포화단계 진입한 지금도 이 같은 기대가 지속될 수는 없다. 오히려 작지만 싹수 있는 분야에 차근차근 발 담그는 일에 주목해야 한다.
KT는 지난 수년간 가장 강력한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으로 세계 톱 클래스에 올랐다. 경영자들의 안목과 근로자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 그런데도 시장 환경 탓에 직원들 사기가 처지고 미래를 확신하지 못한다면 문제다. SK텔레콤은 이동통신시장을 ‘제대로 아는’ 임직원들과 과감한 기술투자로 최단기간 최고의 기업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팎의 질책어린 시선으로 숨이 가쁘다면 억울할 것이다.
다시 뛰어 보자.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자. 성장 동력이 확인되면 기업은 회수 기간이 길더라도 투자에 적극 나서라. 정부도 이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고 규제를 완화하자. 지시와 복종이 아닌 이심전심으로 다시 한 번 통신시장을 이끌고 나가야 할 때다. 일본이 앞서 나가고 중국이 뒤쫓아 온다. 시간이 많지는 않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