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분기 우리나라 주요 인터넷 포털기업들의 실적이 사상 최악으로 나타났다. 물론 요즘 기업들 어려운 거야 특정 분야에 국한돼 있는 것은 아닐 터다. 그래도 유독 포털업계가 눈에 밟히는 것은 이 분야에 지금 당장 어떤 처방이 필요할 만큼 위기상황이 엄습해 왔다는 공감대가 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포털업계는 너나없이 대형화라는 미명 아래 백화점식 종합포털을 지향해 왔다. 서비스 측면에서 보자면 메일에서부터 블로그·카페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다. 콘텐츠 역시 검색에서부터 뉴스·쇼핑·금융·어린이 등 거의 모든 영역이 들어 있다. 이런 백화점식 포털들이 줄잡아 10여 곳에 이른다. 회원수도 1000만명 이상을 주장하는 곳만도 5∼6곳이나 된다. 화려하기가 그지 없다.
하지만, 이렇다 보니 모든 포털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잃고 말았다. 4대 포털이니, 5대 포털이니 하는 곳의 첫페이지를 들여다 보면 메일, 뉴스,카페(블로그), 게임, 쇼핑, 지식… 메뉴구성이 천편일률적이다. 심지어 바탕을 구성하는 스킨 컬러도 비슷해서 쉽게 구분이 안갈 정도다. 한 포털이 새 서비스를 개설하면 잇달아 유사 서비스를 내놓은 결과다.
포털들이 이런 백화점식을 지향하다 보니 전문포털이나 콘텐츠제공자(CP)들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금융, 출판, 여성, 교육, 교통,여행, 의료, 예술, 지역 등 전문 분야는 많지만 실질적으로 살아남은 곳은 고작 게임과 경매 정도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대형 포털의 독식 차원을 넘어 중소포털이나 CP들이 몰락하는 인터넷 비즈니스의 왜곡을 불러오고 있다. 과거 경제개발 시대 재벌들의 문어발식 기업 확장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포털 경영이 꼭 백화점식이어야만 하는가. 이런 한국식 포털들의 상식을 극명하게 깨뜨려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구글이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구글은 검색서비스 하나로 500억달러에 이르는 기업가치를 이뤄낸 곳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포털 업계 1위인 NHN의 코스닥 시장가치는 고작 10억달러, 2위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이 3억달러 정도다. 구글 사이트를 가보면 더욱 놀랄 일이 벌어진다. 처음부터 허옇게 흰 바닥투성이로 드러나는 ‘http://www.google.com’ 첫페이지에는 사진이나 그래픽 이미지는 고사하고 등장하는 단어수조차 모두 합쳐 40개가 안 된다. 구글의 사례는 전문포털이나 CP의 육성 필요성과 함께 포털 비즈니스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좀 과장된 얘기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포털들의 주된 관심사는 스포츠·연예정보뿐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스포츠·연예뉴스는 트래픽을 가장 많이 유발하는 콘텐츠 가운데 하나다. 한 포털회사가 연간 수십억원씩을 들여 스포츠신문의 뉴스를 모두 사들인 것은 그래서 일견 이해가 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런데 정보 가공 측면에서 스포츠·연예뉴스만큼 진입장벽이 낮은 콘텐츠가 또 있을까.
물론 이 사건은 단편적인 사례지만 우리나라 대형 포털의 서비스나 콘텐츠들이 대부분 진입장벽이 낮은 그만그만한 것들이고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포털업계의 실적부진이 이번 3분기뿐만이 아닌,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자명해지고 마는 대목이다. 이런 마당에 구글은 호시탐탐 한국 직접 진출을 노리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거대 기업들은 한국에서 제대로 된 포털비즈니스를 하고 싶어한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더는 백화점식 비즈니스는 안된다. 해외 진출이든, 사이트 통합(M&A)이든 뭔가 가시적인 결단과 실행이 있어야 할 시점이다. 최소한 포털업계의 공멸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서현진 디지털문화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