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휴대폰을 산업의 ‘밥’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지난 11월 말 기준으로 드디어 휴대폰 수출액이 산업의 ‘쌀’인 반도체를 넘어섰다. 또 하나의 신화가 탄생한 셈이다.
이 11월의 신화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먼저 휴대폰이 우리 수출산업의 제일 역군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렸다.또 우수한 품질을 앞세워 제값 받고 파는 제품만이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한번 일깨워 줬다. 경쟁업체들이 넘볼수 없는 기술력과 마케팅 경쟁력을 지닌 제품이 아니고는 어림없는 얘기다.
우리는 이를 흔히 명품이라 부른다.휴대폰은 분명 반도체이후 우리가 건진 명품이다. 명품은 결코 그냥 만들어지지않는다. 제품의 성능은 기본이고 브랜드, 가격, 이미지등 여러 마케팅 변수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작품이다.
명품은 장인이 만든다. 뭔가 하나에 미친 마에스트로만이 명품을 만들수 있다. 휴대폰 신화 역시 마에스트로가 없이는 불가능한 사건이다. 삼성의 이기태사장이 돋보이는 이유다. 그는 분명 휴대폰에 미친 사람이다.
이젠 전설이 돼버린 지난 95년의 무선전화기 방화사건만 봐도 그렇다.품질이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15만대의 제품( 5백억원어치)을 눈하나 깜짝 안하고 불태운 그의 ‘완벽주의’는 CEO라기 보다는 장인에 가깝다.
품질에 관한 그의 집착은 무서울 정도다. 제품의 성능을 이슈로한 회의를 할 경우 끼니를 거르는것은 다반사다. 원하는 결론이 나올때 까지 시간에 상관없이 몰아부치는 그의 ‘불도저 정신’ 탓이다.
그가 요즘 화가 많이 나 있다. 갈수록 심화되는 가격경쟁 때문이다. 아직 대놓고 삼성에게 가격인하를 요구하는 업체는 없지만 해외 서비스업체들의 단말기 가격 하락을 위한 유도전략은 얄미운 정도로 치밀하다. 노키아나 모토로라등의 해외업체는 물론 국내업체들까지 내세워 신경전을 벌이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삼성이 시장의 점유율과 수익성 두마리의 토끼를 다 잡도록 놔두지는 않겠다는 게 해외서비스 사업자들의 노림수다. 이 전략에 이미 노키아가 손을 들었다. 노키아는 수익성 대신 시장 점유을 택했다.
많은 이들이 향후 삼성의 선택을 궁금해 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사장의 각오는 변함없어 보인다.
“우리가 가격을 조금 내리면 분명 지금 수준에서 많게는 30%이상 판매물량을 늘리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시장점유를 늘리는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장확대를 위해 가격인하전략을 진언하는 임원들이 언제나 듣는 말이다. 그의 말속엔 CEO로서 상품의 수익성 하락을 막겠다는 전략적 측면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명품이 ’하품’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장인으로서의 안타까운 속내가 더 짙게 배있다.
아마도 이런 장인정신이 정보통신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IEEE산업리더상’을 받게 만든 진정한 이유인지 모른다.
이 사장의 도전은 바로 이제부터다. 휴대폰을 국내 제일의 수출 효자산업으로 올려놓은 지금부터가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 같다. 당장 내년부터 시장에서 점유율과 수익율중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일들이 무수히 벌어질 것이다. 심지어 회사와 개인을 흔드는 음해성 루머에도 시달릴 것이다. 이모두가 따지고 보면 1등의 업보다.
이렇게 명품은 만들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도 어렵다. 하지만 휴대폰 대박신화는 이어져야한다. 이미 휴대폰이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자리매김한 이상 어쩔수 없다. 이젠 특정기업의 문제가 아닌 국가경쟁력이 달린 문제다. 장인정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명품의 신화을 잇는 것, 그것이 이사장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김경묵부국장@전자신문, km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