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비즈니스 분야의 각종 규제시스템을 ‘자율규제’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현행 법적규제가 갖는 가장 큰 맹점은 우선 규제법률과 소관 기관의 난립으로 규제의 일관성과 효율성이 크게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분야에 대한 규제법률은 현재 민법·형법·청소년보호법·저작권법 외에 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등 10여개나 된다. 여기에 비즈니스모델에 따라 생겨난 하위법까지 더하면 부지기수다. 게다가 이를 소관하는 중앙부처급 기관만도 행정자치부·문화관광부·정보통신부·공정거래위원회·청소년보호위원회 등 5곳이 넘는다.
관련 법률의 난립은 ‘범죄와 형벌을 미리 규정해 둬야 한다’(죄형법정주의)는 법 정신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기능이나 비즈니스모델이 확장되는 인터넷 특성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매번 새 규제법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법률마다, 소관 기관마다 들이대는 잣대가 달라 중복규제나 반시장적 규제와 같은 폐해를 낳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대표적인 폐해가 올 한해 게임업계를 달구었던 ‘리니지2’ 사건이다. 같은 사안(리니지2)을 놓고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음반비디오및게임물등에관한법률에 따라 18세이용가 등급으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19세를 성인 기준으로 하는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각각 판정한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하나의 제품을 두고 서로 다른 법률적 의무를 동시에 지켜야 하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법률에 의거한다는 명목으로 기관마다 민원처리성 정책을 경쟁적으로 남발하는 일이나, 유사 서류를 기관들의 요구대로 수백∼수천건씩 제출해야 하는 풍토 등도 문제로 지적된다. 유무선통합 콘텐츠사업을 벌이려던 한 중소 사업자가 1주일 새에 각 규제기관에 제출한 자료 건수가 1000건이 넘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이런 법적규제 만능주의는 규제 그 자체에 대한 권위 추락을 넘어 각종 인터넷 역기능에도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것은 이런 규제가 필연적으로 기업들의 건전한 경영활동을 위축시켜 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점일 터이다.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자율규제는 규제나 관리감독을 법률이 아닌 민간주도형 상설기구를 통해 이뤄지게 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를 테면 정부·네티즌·기업 등이 함께 참여하는 상설기구에서 규제모델과 강령을 만들고 합의정신을 통해 이를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는 법률이 인터넷의 발전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 고육책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소수 권력자나 법률로는 통제가 불가능한 인터넷 세계를 가장 효율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이라는 해석이 더 적절할 것이다.
자율규제 도입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 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 EU 등은 이미 ‘안전한 인터넷액션플랜’과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자율규제시스템을 정착시켜 나가고 있다. 자율규제는 내년부터 무선인터넷망의 완전 개방과 유무선서비스의 통합이 가속화될 우리나라에서도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문제는 자율규제시스템을 적용하기 위한 기반확충이다. 크게는 자율규제 적용을 위한 중장기형 정책이 마련돼야 하겠고 단기적으로는 상설기구의 법적지위보장과 같은 포괄적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많은 논란과 우려가 있겠지만 자율규제 도입은 인터넷강국인 우리나라에서 더는 늦춰서는 안될 중차대한 사안이며 시대적 흐름이다. 그런 점에서 내년은 우리나라에서도 자율규제 도입을 위한 기반확충이 이루지는 원년이 돼야 할 것이다.
◆서현진 디지털문화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