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CES가 남긴 것들

 매년 1월 첫째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세계 정보통신업계의 이목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집중된다. 세계적인 게임이 이곳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지노 도박게임이 아니다. 세계 정보통신 시장을 놓고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올인하는 도박이다. 일명 컨슈머일렉트로닉스쇼 즉 CES가 바로 그것이다.

 CES는 세계 정보통신 시장과 기술의 흐름을 한눈에 짚어볼 수 있고 매번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다는 점에서 숨막히는 도박과 진배없는 흥미를 제공한다. 올해는 물론 향후 몇년간 승부는 CES라는 도박판에서 사실상 결정된다. 때문에 세계적인 기업들이 막이 오르기 전까지 회심의 출품작을 절대 비밀에 부친다.

 CES가 지난 주말 막을 내렸다. 이번 CES에서는 한국의 3개 기업, 삼성전자·LG전자·레인콤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이들에게로 쏠렸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소니와 마쓰시타의 부활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달라졌다. 세계인들의 시선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일거수 일투족에 그림자처럼 달라붙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화면과 선명한 화질, 다양한 기능의 디스플레이와 TV에 매료됐다. 정보산업계의 양대 맹주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구애의 손길을 뻗치기에 바빴다.

 레인콤은 애플 타도의 기수로 떠올랐다. 그 옛날 PC에 이어 휴대형 멀티미디어에서 다시 한 번 스티브 잡스와 한판승부를 앞두고 있는 빌게이츠가 레인콤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들 3인방이 앞으로 가정용, 휴대형 정보가전 시장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드러났다는 의미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 3인방이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성공은 세계적인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한국이 정보가전 분야에 관한 한 가장 앞선 인프라, 시장 그리고 기술을 지녔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산업은 정보와 가전, 나아가 통신과의 융합이 한창이다. 삼성과 LG, 레인콤은 한국의 앞선 인프라 위에서 가장 빠르게 이를 수행해 나가고 있다. IT 한국의 진정한 가치가 이번 CES에서 빛을 발했다.

 하지만 이는 기선제압이요 서막일 뿐이다. 본 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 됐다. 한국의 인프라, 시장, 기술은 어디까지나 작은 시험무대일 뿐이다. 진정한 승부는 한국이 아닌 거대한 미국, 중국 등 해외에서 결정난다. CES의 승리는 희열과 함께 숙제도 던져주었다. 한국은 CES에서 승리함으로써 미로를 여는 히든카드를 경쟁자들에게 읽혀버렸다. 이미 일본과 미국, 심지어 중국업체들까지 한국이 열어 놓은 길로 앞다퉈 모여들 게 분명하다.

 우리에겐 또 다른 무기가 필요하다. 무엇일까. 작지만 빠른 속도의 한국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부품과 제조 경쟁력, 원천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다행히 디스플레이에 관한 한 한국이 으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도 더없이 중요한 자산이다. 문제는 열악해져 가는 제조환경과 취약한 시스템 반도체, 열악한 일반부품이다. 갈수록 경쟁국들보다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불안한 제조업 환경도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삼성과 LG의 생산기반은 해외로,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다. 레인콤은 아예 중국에다 공장을 차렸다. 한국 시장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근본적인 경쟁력까지 한국에서 확보하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한국의 자랑인 이들에게 또 하나의 비장의 무기를 하루빨리 지원해야 한다. 튼튼한 부품 경쟁력, 우수한 제조 환경, 원천기술 투자확대가 바로 그것이다.

 유성호 디지털산업부 부장@전자신문, sh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