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비주류`가 좋은 이유

“황우석 교수와 나는 학계의 비주류”

 인간형 로봇 휴보(HUBO)의 탄생 주역인 오준호 KAIST 교수가 최근 어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휴보는 알다시피 15년 동안 3000억원을 쏟아부은 혼다의 아시모(ASIMO)와 비교되는 전형적인 벤처형 연구 산물이다. 오 교수팀은 3년 동안 불과 5억여원만을 투입하고도 휴보를 개발해내 단번에 황우석 교수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그러나 오 교수는 모모 사업단에서 수백억원씩을 투입했더라면 휴보는 물론이거니와 자신도 조명을 받지 못했을 거라고 주장한다. 대규모 조직에서 몇년간 수백억원씩 쏟아부으면 휴보는 ‘당연히’ 만들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신기술이나 신제품 개발에 정말 필요한 것은 전문성과 기동성이라는 게 오 교수의 지론이다. 전문성은 기술과 시장 흐름 전체를 꿰뚫는 것이고 기동성은 빠른 의사결정의 요체다. 조직과 자금이 아닌, 전문성과 기동성을 최고 자산으로 삼는 게 바로 벤처다.

 오 교수 말대로라면 벤처기업은 비주류인 셈이다. 비주류는 선택이 아닌, 타율에 의해 강요된다는 점에서 외롭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외로움과 고통을 이겨내 주는 게 전문성과 기동성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벤처로 성공한 기업 대부분이 비주류로 출발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때 최고 벤처기업으로 꼽혔던 한글과컴퓨터는 ‘당연한’ 개발을 일삼아왔던 대기업들을 모두 제압하고 세계적인 워드프로세서회사가 될 수 있었다. 연구원 출신 젊은이들이 창업한 메디슨은 각계의 비웃음 속에 3차원 초음파진단기를 처음으로 상용화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새롬기술은 무료 전화에 대한 가능성만으로도 한국 최고의 벤처 신드롬을 일궜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저러다 거덜나지!”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무료 메일과 인터넷카페로 세계 5대 포털로 성장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기업들이 불과 몇년 만에 그저그런 회사로 전락하거나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만다는 점이다. 한글과컴퓨터는 수 차례 최고경영자가 바뀌면서 평범한 소프트웨어회사로 바뀌었고 메디슨은 급기야 법정관리 신세까지 갔다. 새롬은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사명을 바꾸었고 다음은 무리하게 인수한 미국기업 라이코스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렵게 얻은 명성과 부를 평범한 사업이나 조직 확장에 무리하게 투입했다가 화를 자초했다는 점이다. 주류(대기업)의 관료주의를 비판하던 비주류 정신이 어느새 입장이 바뀐 것이다.

 비주류가 다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벼락부자형인 벤처기업들이 일시에 관료화되는 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우려를 낳게 한다. 물론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는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벤처기업들은 그 시기가 너무 빨리 닥친다는 게 문제다. 20년 가까이 주류였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철저하게 비주류를 고수해온 마이크로소프트까지는 아니더라도 ‘갈등’의 시기는 가급적 늦추는 게 전문성과 기동성을 유지할 수 있는 묘안일 것이다. ‘성공한’ 벤처기업 NHN의 김범수 사장이 최근에 들려준 말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우리 회사의 최대 적은 대기업화(관료화)에 대한 무의식적 욕구다.”

 오준호 교수에서 출발해온 우리 벤처기업들은 대개 김범수 사장 시기에 와서 ‘갈등’하다가 스스로 주류 편입을 시도하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그간의 사례들은 때 이른 주류 편입은 벤처기업에 독약일 뿐임을 보여준다. 비주류를 고집하는 것은 외롭고 고통스럽지만 기업으로서 더 많이 ‘꿈’꿀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는 지름길이다. 비주류를 견지할 수 있는 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업 경쟁력이 아닐 수 없다.

◆서현진 디지털문화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