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진정한 과기 인프라

“우리나라 과기 인프라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기초가 잡혔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전체 국가예산의 5%를 연구비로 만들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에 따라 다시 한 번 과기인의 사기가 진작됐다. 참여정부의 과학문화운동 확산 등은 과기인들의 사기진작과 함께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최근 과기계의 한 인사가 과학기술 인프라 환경에 대해 들려준 얘기다.

 말 그대로 참여정부에서는 과기부 수장 직급이 부총리로 격상되면서 산하 19개 부·처·청 등에 대한 예산의 기획·조정·분배라는 강력한 권한까지 확보했다. 황우석 박사를 위시해 과기인들의 기술성과가 세계적인 과학지에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활발한 사이언스 코리아 운동 등을 통해 과학기술에 대한 마인드도 일반인에게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과학기술인이 연구개발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인프라가 우수한 건물, 시설, 기자재 등 물리적인 연구환경뿐이겠는가.

 과학자도 생활인인만큼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올 들어 부쩍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과학자 억대 연봉 쏟아진다’는 기사는 한겹 뒤집어 보면 그동안 우수한 과기인들의 대우도 별 거 아니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비정규직의 예는 심한 정도를 넘어선다. 인공위성연구센터의 경우 비정규직 비중이 75%다. 프로젝트 기반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정규직 전환의 희망도 없고 연봉도 정규직 절반에 불과한 이들 연구원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여지는 없다. 생명공학연구원도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에게 열의와 창의력을 기대하긴 힘들다.

 정부가 올해부터 과기 프로젝트 비용을 크게 늘리기로 한 것은 연구원들에게 ‘좋은 선물’이긴 하지만 결코 ‘최대 선물’은 될 수 없다. 많은 비정규직 과학자는 여전히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한 ‘박봉’의 현실을 감내해야 한다.

 현업에 있을 때는 그나마 낫다. 퇴직 과학자의 노년 또한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최근 30년간 근무한 한 과학자의 퇴직금이(중간정산을 했다손 치더라도) 1억5000만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잣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과학자가 퇴직 후 비빌 언덕이 없다는 점이다. 이래서 나온 것이 채영복 전 장관 때 추진된 과학기술인 공제사업인데 이 또한 각 연구기관의 자금부담으로 인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400억원을 과기진흥기금에서 만들었지만 이를 발판으로 각 기관이 협약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어선 선진국들은 90년대부터 과학분야 기피현상이 발생했는데 우리나라는 IMF 사태를 맞은 이후 급작스레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현업과 퇴직 후 두 경우 모두 물질적 보장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과학 직종에 유능한 인재들이 몰려들기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명필이 붓을 탓하지는 않는다. W이론으로 유명한 모 교수는 정부의 이공계 육성을 위한 혜택에 대해 유흥업소에서 여종업원을 모집할 때 쓰는 광고문인 ‘침식제공 선불가’와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과학자들에게 당근을 제시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기업이 유능한 인재에게 대발탁의 기회를 주듯 과기계의 우수한 인재들을 과감히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퇴직 과기인들을 위해 어렵사리 마련한 과기공제회 사업도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줘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향한 핵심이 과학이라면 그 정도도 못할 일이 무엇인가. <이재구 경제과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