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4월이다. 이맘 때가 되면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論’이 생각난다. ‘4월 혁명의 순수성만 남고 모든 허위는 가라’고 외친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시인이 바라본 껍데기들의 특징은 이렇다. 항상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물론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다. 늘 사안의 본질과는 먼 ‘세 불리기’ ‘제 잇속 차리기’만 신경쓰는 군상이다.

 이들로 인해 사회는 항상 분쟁하고 답보하기 일쑤다. 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저해하는 이들이 오죽 답답했으면 시인은 이렇게 껍데기라는 이름으로 직격탄을 날렸을까.

 지금 주변에선 통·방융합 논의가 한창이다. 국회와 정부는 물론이고 학계에서도 난리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목소리 높이기 전쟁이 여기저기에서 벌어진다. 그 수많은 자리에서도 주무부처인 정통부, 문화부, 방송위는 한 번도 같은 목소리를 내 본 적이 없다. 국정을 책임지는 국회의원들은 이 틈을 노려 이름걸기식 언론플레이에 열중이다. 시민단체, 언론노조, 교수들까지 나서 자기 입장을 명분으로 포장해 연일 떠든다. 다들 전문가연하는 사람 투성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저 개인이나 집단 이익의 대변자일 뿐이다.

 통·방융합은 앞으로 우리 먹거리를 창출할 컨버전스 분야의 단초다. 산업적·문화적 파급력도 막강하다. 이를 둘러싼 무성한 논의는 분명 필요하다. 문제는 그 기준이다. 지금처럼 대의가 실종된 채 서로 대립각만 세우는 상태에선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 그 논의의 장은 껍데기들의 향연장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통·방융합 문제의 본질은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단말과 네트워크 그리고 서비스의 통합으로 산업적인 부가가치를 어떻게 하면 더 높이고 소비자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게 하느냐다. 이로 인해 어느 부처의 위상이 높아지고 규제권을 누가 가져야 되는가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IPTV만 봐도 그렇다. IPTV를 방송위는 별정방송으로, 정통부는 부가통신사업으로 규정한다. 규제 권한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다. 선방은 방송위가 날렸다. 정통부가 ICOD라고 이름을 바꿔 피해가는 사이에 시범사업 추진을 전격 선언함으로써 허를 찔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한 것은 없다. IPTV는 여전히 시청자 눈으론 TV방송일 뿐이다. 이 상식은 두 기관에는 통하지 않는다.

 두 기관의 주도권 다툼은 일면 이해된다. 막대한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가진 방송과 산업적 영향력이 큰 통신이 융합하는 과정에서 정책을 주도하고 싶은 게 정책기관의 본성이다. 이는 또 종종 업무 추진의 강력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산업 발전과 국가 경쟁력 강화, 시청자 편익 증대 등과 같은 대의를 앞선다면 문제다. 더 나아가 규제를 앞세운 정책주도라면 또 다른 껍데기일 수밖에 없다.

 전세계가 방송의 디지털 전환에 전력을 쏟고 있다. 또 뉴 미디어 도입에 한 발이라도 앞서 나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통신 무역 장벽이 허물어지고 방송에 대한 개방 압력도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는 해외 경쟁력에 치명타로 작용한다. 게다가 그 규제권을 장악하겠다고 너나없이 나선다면 ‘디지털’이라는 패러다임은 우리에게 기회가 아닌 죽음의 길이다.

 우리나라의 IT산업은 그동안 정부 주도로 초고속 성장을 구가해왔고 산업의 중축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정부가 그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보통 아이러니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들은 가야 할 때다.

  김경묵부국장@전자신문, km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