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요금 종량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독도와 교과서 문제로 온 세상이 떠들썩한 가운데 종량제 논란은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그만큼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깊고 크게 얽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업자들은 지나치게 인터넷을 많이 쓰는 사람들 때문에 채산성을 잃고 있다며 요금을 종량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액제는 많이 쓰는 사람이나 적게 쓰는 사람이나 요금을 똑같이 내기 때문에 불공평하다고 강조한다.
네티즌은 종량제란 요금을 올리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반발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평등한 사이버 세상을 추구하는 인터넷의 기본 이념과도 종량제는 배치된다고 강변한다.
양측의 주장이 워낙 팽팽해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어느 한쪽이 포기하지 않는 이상 힘 대결만이 남은 듯하다.
종량제 논란을 지켜보면서 우리 모두 ‘자기 함정’에 빠져 있다는 점을 새삼 느낀다. 어느 측이든 자기 주장만 옳고 타당하며 상대가 잘못됐다는 식이다. 자기 잘못은 없다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자, 그럼 한 번 따져 보자. 우선 사업자들부터. 인터넷은 정액제로 출발했다. 인터넷 시대를 앞당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사업자들은 이용자 수를 늘리기 위해 너도나도 정액제 도입에 앞장섰다. 그런데 이제 와서 종량제의 당위성만 강조하고 있다. 종량제 전환이 당초 정액제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극성스러운 네티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종량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정액제의 문제점을 미리 간파하지 못한 책임은 사업자에게 있다. 하지만 사업자들은 모든 걸 극성스러운(?) 네티즌 탓으로 돌린다. 최소한 처음에 정액제를 선택한 게 잘못이었다는 과오 인정과 사과도 없다.
다음은 네티즌. 사업 초기부터 자연스럽게 정착된 정액제 환경에 익숙해진 네티즌이 종량제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자유경제 질서상 종량제는 타당하다. 상품을 많이 구입할수록 총가는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거래는 종량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전화·전기·수도요금처럼 말이다.
네티즌은 사업자들의 정액제 약속 위반만을 지적하며 종량제의 불리함을 피하려 한다. 종량제의 타당성이나 불가피성에 대해선 무시 일변도다. 네티즌은 인터넷에 관한 한 특권만 누리려 한다. 그러면서 정액제로 인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이들을 애써 외면한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논란거리인 방사능폐기물매립장(방폐장)과 관련해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중저준위 방폐장을 건설하는 게 시급하다는 정부, 우리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지역민, 인류와 지구를 멸망시킬지도 모를 위험한 핵은 안 된다는 환경단체의 목소리뿐이다. 이들에게는 방폐장 건설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피해를 보는 또 다른 이들의 사정이나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에는 단 한 곳도 예외없이 임시 방폐장이 있다. 지역민이나 시민단체들은 임시 방폐장에 대한 문제는 거론조차 않는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영구 방폐장 유치지역에 엄청난 지원을 약속하면서 임시 방폐장 주민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위험하기 그지없다(?)는 이 찌꺼기들이 영구 방폐장도 아닌 임시 방폐장에 계속 쌓여 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다 .
우리에게는 언제나 한 목소리 아니면 두 목소리뿐이다. 한 목소리든 두 목소리든 큰소리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작지만 합리적인 세 목소리나 네 목소리는 묻혀지거나 무시되기 일쑤다. 그래서 중재는 없고 결투만 난무한다.
지금 세상은 정체성도, 흑과 백도 사라지거나 변하는 컨버전스 시대다. IT 대한민국은 이 거대한 컨버전스 물결을 앞장서서 이끌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앞날이 자칫 기술만의 컨버전스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유성호 디지털산업부장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