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법대로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도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지고 있는 듯하다. 으레 선진국 병인 양 치부해 온 소송사태가 이제는 남이 아닌 우리의 현실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의 변화는 경영의 투명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기업환경의 변화에 대한 불가피한 자구방안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가 복잡화, 다원화될수록 법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회사들마다 법조인 출신을 임직원으로 채용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소송에 대비하고 있다. 또 경영진의 잘못된 경영행위를 방어하기 위해 회사마다 거액의 손해배상보험, 이른바 ‘임원보험’을 들고 있다. 해마다 임원보험의 금액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 이제는 1000억원대 보험을 들고 있는 기업도 등장했다.

 모든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는 게 보편화돼 있는 다국적기업들이 주도하는 우리나라 IT산업에서 이 같은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난 후 변호사가 의사결정의 집행 여부를 판가름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변호사가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기업 내에서 최고경영자보다 변호사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개발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와 함께 기술의 발전과 제품의 복잡화 및 융합화로 어디까지 개발자의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갈수록 애매모호해 지는 상황에서 앞으로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는 기업 간 다툼은 치열해 질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법으로 재단하는 것이 그렇게 바람직하지는 않다. 산업이나 시장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법으로 무장한 기업들이 방어용으로 법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업체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활용할 경우 부작용은 심각해 질 수밖에 없다. 원고나 피고 모두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공격과 대응논리를 펴게 되고, 이로써 기업의 우선순위가 돼야 할 연구개발투자나 영업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더구나 소송에 드는 비용까지 부담할 경우 웬 만한 자금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로서는 패소할 때는 물론이고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정상적인 기업경영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영업상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해 소송을 영업활동의 하나로 이용하는 악습도 나타날 수 있다. 소송이 벌어지면 제품을 사 쓰는 고객 입장에서는 당연히 법정다툼이 끝난 후로 제품구입을 미루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시장이 위축되는 것이다. IT투자가 아직 활성화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소프트웨어기업 간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분쟁조정기관인 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에 하루에도 몇 건씩 특허 및 저작권 침해사실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의뢰가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각하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부분 중소기업 수준인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업체들이 법으로 무장된 다국적 기업이나 대기업에 맞서 살아남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물론 기업을 경영하는 데 편법이나 불법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법을 앞세워 경쟁업체를 싹 트기 전에 제거해야 하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이 있다면 이것은 착각이다. 숲이 번성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나무만으로는 안 된다. 풀도 있어야 하고 작은 나무도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법대로 하자는 법 만능주의보다는 선의의 경쟁으로 시장을 이끌어가겠다는 기업정신이 앞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양승욱부장@전자신문, sw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