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차세대 먹거리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문화관광부의 의지가 대단하다. 반갑기 그지 없는 일이다. 이제까지 경제나 산업과는 무관했던 문화부다. ‘문화나 예술이 어떻게 산업이 될 수 있느냐’며 얼굴을 벌겋게 달구던 때가 불과 엊그제다. 그런 문화부가 문화를 산업의 원천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일단 놀라운 사건이다.
연초에 문화부가 ‘문화콘텐츠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올해 3대 정책목표의 하나로 제시한 것은 그 단적인 예다. 곧이어 문화산업 육성을 겨냥한 1조원대 모태펀드 조성계획이 나왔고, 고급 인재 양성을 위한 문화기술(CT)대학원의 개원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문화부는 참여정부의 국정 목표인 ‘세계 5대 문화산업강국 진입’을 오는 2007년까지 실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의지나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실현시켜 줄 적절한 방법이 무엇이냐일 것이다. 설득력 있는 방법이 제시되지 못할 경우 안팎으로 ‘관료적’이라거나 ‘정치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도상의 계획인들 누가 세우지 못하겠냐는 비아냥도 없지 않다고 한다. 이런 비판에는 당연히 장관이 바뀌면 그만 아니겠냐라는 뜻도 포함돼 있을 터다.
따지고 보면 문화부의 이 같은 계획은 산업 육성이 주된 임무인 산업자원부나 정보통신부 등에 비교해서 볼 때는 주목할 만한 일이 못 될 수도 있다. ‘몇년 후에 세계 몇 위’하는 식의 계획도 경제개발시대의 전형적인 수사로 치부될 수도 있다. 게다가 올 들어 부쩍 바빠진 행보도 유관 부처들의 경계의식을 부추겨 오히려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1조원대 모태펀드 계획이 벌써 기획예산처의 예산방어 속성과 충돌할 기미가 보이는 것은 상징적이다.
유관부처들의 경계의식은 과거 정보산업 관할 건을 놓고 과기부, 산자부, 정통부(체신부)가 사사건건 영역다툼을 벌인 것이 좋은 본보기다. 관료주의가 빚은 이런 병폐는 결과적으로 예산의 중복을 가져오고 기업이나 상품의 경쟁력 저하의 원인이 됐다.
그런 점에서 문화부가 최근 해법으로 내세운 ‘문화와 과학의 행복한 만남’은 이 같은 우려를 나름대로 상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지난달 과기부와의 업무 제휴 계기가 된 이 슬로건은 스스로의 역할과 한계 그리고 문화의 속성을 함께 이해하려는 문화부의 노력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정책 의지만 갖고는 안되는 게 산업 육성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사례에서처럼 한 부처가 산업 육성 기능이나 메커니즘을 모두 갖추는 것은 진짜 무모한 짓이다. 문화라는 것 역시 손에 잡히는 게 아니어서 기술이나 시스템의 지원 없이는 먹거리로 만들 수 없다.
‘행복한 만남’은 문화산업 육성 방법이기에 앞서 문화부가 스스로 역할의 한계를 솔직하게 시인하고 과기부나 정통부가 보유한 기술과 시스템 경험을 빌리겠다는 산업육성 컨셉트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과기부나 정통부 역시 이제는 문화적 기반 없이는 기술의 발전이나 산업의 육성이 어렵다는 것을 반 발 앞서 간파한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문화부의 변화와 문화산업 육성 의지가 안팎으로 주목을 받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 ‘행복한 만남’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행복한 만남’이 ‘문화(콘텐츠)가 차세대 먹거리가 돼야 한다’는 문화부의 정책적 목표를 수행하는 최선의 방법이 되길 기대해 본다. 나아가서는 중앙부처 간 자유로운 정책 협력 모델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현진 디지털문화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