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전자ID카드, 트로이의 목마?

최근 미국에선 기존의 운전면허증 등 ID카드를 대체할 전자ID카드의 도입 문제로 한창 시끄럽다. 논란의 시작은 전자ID카드의 도입을 명문화한 ‘리얼ID법(The Real ID Act)’이 의회에 상정되면서다. 소수민족단체와 시민단체 등의 반발이 거세지만 리얼ID법은 이미 미 상하원을 통과했으며 부시 대통령의 재가만 남겨놓고 있다. 대통령의 승인 절차를 거쳐 2008년 5월 정식 발효될 예정이다.

 리얼ID법이 시행되면 미국인은 전자태그(RFID)·생체인식·DNA데이터칩 등 IT기술을 채택한 운전면허증이나 ID카드를 공공기관에서 발급받아야 한다. 이 기술 중 무엇이 선택될지는 미정이다. 국토안보부에서 결정하도록 권한을 위임받았을 뿐이다.

 현재 법 제정 작업이 막바지 단계지만 찬반 논란은 여전히 팽팽하다. 마치 과거 우리나라의 전자주민카드 논쟁을 보는 듯하다. 리얼ID법 지지자들은 전자ID카드가 신분카드의 위변조를 막고 미국을 테러리스트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9·11테러 당시 테러리스트들이 미국 정부에서 발급한 운전면허증이나 ID카드를 소지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게 주된 논지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전자ID카드가 사실상 ‘국민카드(National Card)’와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신분증이 없는 미국에선 운전면허증이나 사회보장 카드가 사실상 전국민적인 신분카드다. 따라서 운전면허증 등 ID카드에 첨단 IT기술을 접목할 경우 국민을 통제하는 장치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특히 국토안보부가 전자ID카드에 수록된 개인 정보를 하나의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통합 관리한다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리얼ID법에 따르면 ‘기계적으로 해독 가능한’ 운전면허증이나 ID카드를 발급받기 위해선 출생증명서와 사회보장번호는 물론이고 디지털 사진, 주소, 생일 등 사적인 정보를 정부 및 공공 기관에 제출해야만 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미국인 입장에선 사적인 정보가 국가 기관에 의해 관리 및 통제되거나 해커들에 의해 노출될 경우 예기치 못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소수민족단체들은 미국 내 출생사실을 증명하기 힘든 외국인이나 불법 이민자·망명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같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리얼ID법의 도입은 거의 확정적이다. 굳이 이 법이 아니더라도 최근 미국에선 여러 종류의 전자ID카드 도입이 진행되고 있다. 국무부가 생체인식 여권에 이어 RFID방식 e여권 도입을 추진중이며 국토안보부는 멕시코와 캐나다 국경을 통해 입국하는 외국인들에게 RFID카드의 적용을 검토중이다.

 물론 전자ID카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아직은 큰 세를 얻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캘리포니아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RFID카드를 발급하겠다고 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결국 학생들의 프라이버시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학부모와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도입은 실패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는지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최근 컴퓨터 칩을 내장한 ID카드의 발급을 제한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으며 메릴랜드·네바다·미주리·유타·버지니아주 등 역시 RFID에 대한 규제방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정부나 의회의 움직임과는 상치된다.

 이 대목에서 미 공화당의 한 의원이 던진 말은 시사적이다. “리얼ID법은 일종의 ‘트로이 목마’다. 미국인의 헌법상 권리인 자유를 희생해 미국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각종 첨단 ID카드의 도입이 전사회적으로, 전지구적으로 확산될수록 논쟁은 더욱 불꽃을 튈 것이다.

◆국제기획부 장길수 부장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