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다매체 다채널 시대다. 인터넷이 케이블과 위성채널의 경쟁을 무색케 하더니 금세 DMB가 출현하고 와이브로와 IPTV가 번호표를 받아든 형국이다.
하지만 아무리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와도 이것을 받쳐 줄 콘텐츠가 취약하다면 어찌되겠는가. 일부에서는 요즘의 다매체 다채널 현상이 네트워크 사업자들에 의한 전송로의 확대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작 그 전송로에 실릴 콘텐츠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는 얘기다. ‘미디어 난개발’이라는 혹평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각종 방송채널은 올해만도 282개나 되고 여기에 필요한 콘텐츠는 연간 73만시간 분량에 이른다고 한다. 앞으로 권역별 지상파 DMB 등이 추진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텐츠는 한정돼 있고 저작권마저 지상파 방송3사에 의해 독과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제작사를 위축시키고 유통의 왜곡을 낳아 콘텐츠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런 시점에서 문화관광부가 대안으로 내세운 게 외주전문채널의 설립이다. 거대기업인 지상파 방송3사에 종속된 콘텐츠 시장에 활로를 터주고 외주 제작사들에 안정적인 소비 공급 채널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대비한 문화 콘텐츠산업 활성화라는 경제적 목표도 달성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리 뜻이 곧고 원대하더라도 주위에서 그 진솔함을 몰라주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방송 정책을 관할하는 방송위원회 입장에서 보면 외주채널이 지상파 형태로 설립되고 그 운영까지도 문화부가 주도한다고 하니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원을 일반광고 수익으로 충당한다는 계획 역시 기존 방송사들로부터 직접적인 불만을 사고 있다. 게다가 공익이라는 방송 형태는 일부 여론과 야당에서 ‘방송 장악’이라는 정치적 기도가 있다는 오해까지 사고 있다.
다행히도 이런 악의적 여론은 최근 들어 다소 잠잠해지긴 했지만 핵심 쟁점은 여전히 살아 꿈틀리거리고 있다. 쟁점은 대략 ‘외주채널의 운영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 ‘방송 형태로서 공영방송이 타당한가’ ‘광고를 재원으로 한다’ 등 세 가지 정도로 모아지고 있다.
이런 쟁점들은 일단 외주전문채널이 방송위나 방송사들이 가진 기득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보는 견지에서 출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반대로 문화부가 외주채널 계획을 세우면서 현재의 상황을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의외로 간단히 해결될 수도 있다.
예컨대 방송의 다양성과 콘텐츠 산업의 활성화라는 운영 목표가 시대적인 소명이며 실현 가능하다는 판단이 선다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대편을 설득하는 게 백번 옳은 일이다. 반면 방송 형태로서 꼭 공영방송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 민영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공공의 제한을 받는 민영방송이라는 절충 형태도 있는 것이다. 광고 재원 문제 역시 비용문제로 지상파 광고에는 엄두를 못내는 중소기업들을 적극 발굴하면 될 것이다. 이 점은 반대파에도 충분한 설득 논리를 가질 수 있다.
외주전문채널 설립을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쪽은 뭐니뭐니 해도 콘텐츠 업계다. 다채널 다매채 시대를 맞아 모처럼 도약을 꿈꾸고 있는 업계는 문화부와 방송위원회의 주도권 다툼이나 방송사들의 우려를 이해할 수가 없다. 콘텐츠가 본격적인 비즈니스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지금 상황이 너무 답답하기만 한 것이다.
◆서현진 디지털문화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