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상생이 좋긴 하지만…

 결코 재를 뿌릴 의도는 없다. 단지 노파심 때문이다. 아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심정일 뿐이다. 지난 이틀간 의미심장한 일이 잇따라 벌어졌다. 1일에는 삼성그룹 사장단들이 상생과 나눔경영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하고 선언하는 자리가 있었다. 중소기업과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되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다. 1%의 반대 세력까지 포용하겠다는 의지도 천명했다. 2일에는 전자 분야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자, 정부 공무원이 한자리에 모여 상생 협력을 위한 대토론회를 가졌다.

 산업계의 상생무드는 5·16 청와대 보고대회 이후 두드러지고 있다. 재계의 대부 격인 전경련을 중심으로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을 위해 이런저런 조치를 취하겠다고 나섰다. 정부도 상생을 위해서라면 규제 일변도의 제도를 완화하겠다며 화답했다.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주인과 머슴 관계로 치부돼 왔다. 대기업은 세경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죽어라 일만 시키거나 어렵사리 일구어 놓은 텃밭을 뺏어 가는 악덕 지주로 여겨져 왔다. 중소기업은 악덕 지주에게 핍박받으며 연명하기에 급급한 불쌍한 머슴처럼 구원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 산업화는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조립산업 위주의 발전전략에 따라 이루어졌다. 가뜩이나 취약한 자본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소수에 집중시키고자 한 3공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극명하게 운명이 갈리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다.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은 더는 조립에 있지 않다. 고부가가치 디지털 컨버전스에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의 특징은 기술과 속도다. 대기업 혼자서는 속도 빠른 기술 경쟁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잽싸면서도 탄탄한 기술력을 지닌 파트너를 제때 찾지 못하면 제 아무리 덩치 큰 공룡이라도 살아남기 힘들다. 중소기업에 인심 쓰듯 하도급을 던져주거나 구태의연한 횡포를 부리는 것은 제 무덤을 파는 일이 돼 버렸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때에 알맞은 기술과 제품으로 대기업의 파트너가 될 수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 대기업에 기대어 그럭저럭 버티려는 중소기업은 생존하기 힘들다.

 시대가 바뀐 만큼 구 시대의 잘못된 관행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질서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횡포와 예속에서 상생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대기업도,중소기업도 예외는 없다.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 대한민국이 국력을 지키고 키울 수 있는 길이다. 정부가 이를 주요 국정과제로 삼겠다고 하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눈과 귀가 경제와 산업에 천착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왠지 기분은 개운치 않다. 상생 협력이 또 하나의 굴레나 규제가 되어 간다는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지난 한 달간 정부나 산업계에서 벌어졌던 행사를 보면 더욱 그렇다. 특히 지난 1일 삼성의 대국민 선언은 대한민국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에피소드다. 마치 삼성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정당 같다. 삼성이 왜 이래야만 했는지 의아스럽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가만 놔두면 자연 치유될 것을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상생은 어디까지나 상호 이익을 담보로 하는 계약 관계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를 우려한 듯 시장의 논리를 강조했다. 정부의 역할은 분위기 띄우기로 족하다. 나머지는 기업들의 몫이다. 섣부른 간섭이나 권유는 자제해야 한다.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정책이 또 하나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하지 말아야 한다. 일말의 불안감이 노파심이요 기우일 뿐이길······.

 디지털산업부장 유성호부장@전자신문, sh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