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휴면특허 딜레마

 이달 초 정부와 전경련 그리고 삼성전자·삼성SDI·현대자동차·ETRI·한전·포스크·산업은행·기술신용보증기금·한국기술거래소 등이 참여해 대중소 기업 협력 차원의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의 휴면특허 정부기부제’ 도입 등을 제도화, 대기업 휴면특허의 중소기업 이전을 촉진키로 한 것이다.

 ‘휴면특허 정부기부제’란 대기업이 휴면특허를 정부에 기부하면 정부가 이를 중소·벤처기업에 이전하고 이를 통해 발생한 수익 일정분을 대기업에 돌려주자는 아이디어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 보자.

대기업은 일단 정부에서 특허를 보유함에 따라 특허유지비를 낼 필요가 없어지지만 주고 나서 후회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역사적 사례가 있다. 지난 50년대. 벨연구소가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지 2년도 안돼 미 법무부에 의해 반독점 소송을 받고 반도체를 비롯한 모든 기술을 다른 회사들에 라이선스해 줘야 했다. 이후 벨·데이비드 사노프 연구소 등의 원천기술은 일본에 유상 제공됐고 일본의 창의적 기술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가공돼 오늘날에 이르렀다.

 창의적 일본인들은 이 원천기술을 절차탁마의 연구 끝에 세계 최초로 고체촬상소자(CCD), 평판LCD TV, CD플레이어, 레이저 프린터, 음원칩 등으로 상품화 했다. 원천기술 개발자가 안된다며 내놓은 기술을 상품화한 전례다. 데이비드 사노프 RCA 회장은 일본을 무시하고 라이선싱했다가 땅을 치고 후회했다고 한다.

중소기업 역시 이 제도에 대한 걱정이 없을 수 없다.

특허라이선싱은 그렇다고 쳐도 특허기술지원계약에 이르면 비협력업체는 난감해질 수밖에없다. 기술지원이란 ‘제조공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원천기술 특허를 잘 골라서 사고, 특히 그와 관련한 기술지원계약을 할 수 있다는 배부른 가정을 할 경우다. 물론 특정 대기업과 협력관계에 있는 기업들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그래서 대기업과 협력관계가 없는 중소기업으로선 걱정이 앞선다. ‘아무리 크게 마음먹는다고 해도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알짜 원천기술특허를 내놓을까’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다면 휴면특허제를 제안한 전경련이나 이를 실시하는 정부도 방심할 수 없다.

 뻔히 이런 그림이 예상되는 데도 대·중소기업협력 차원의 휴면특허 정부기부제라는 대결단은 이뤄졌다. 괜히 잘하자고 하는데 초 치자는 얘기가 아니다.

 얘기를 뒤집어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대기업 기술이전시 외국인에게는 어떤 제한이 있어야 한다. 외국인의 특허공세와 유관한 내용이라면 특허 기부자의 권리를 인정해 줘야 한다. 같은 기술을 여러 기업이 원할 때는 로열티를 낮출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대기업의 기술지원서비스를 받는 중소기업의 제조기밀은 영업비밀 보호법 수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준비가 안 됐다면 지금부터 그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사실 이번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중소기업이 대기업에서 핵심 원천기술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번 휴면특허기부제 시행으로 레인콤이 엠피맨닷컴의 MP3P 핵심 원천기술을 사서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삼성전자마저 따라오게 만든 것과 같은 성공사례가 나올 수 있을까. 나와야만 한다.

 그래야만 모처럼 만들어진 대·중소기업 간 상생 분위기를 꽃피워 창의적 기업가 정신을 가진 모든 중소기업이 성공의 결실을 더욱 확산시켜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경제과학부 이재구부장@전자신문,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