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누구를 위한 식별수단인가

인터넷에서 본인 확인시 주민등록번호가 아닌, 다른 식별수단을 쓰도록 하겠다는 당국의 방침이 논란을 부르고 있다. 포털 회원 가입과 쇼핑몰 이용시 주민번호 대신 공인인증서나 금융계좌 또는 신용카드 정보를 사용하게 한다는 것이다.

 요즘에 대두되는 온라인의 유해성이나 청소년 문제가 주민번호 유출과 관련이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국이 이번 기회에 새 식별수단을 도입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수단을 수용해야 할 처지인 인터넷 업계는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비현실성 등을 들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주민번호가 인터넷에서 개인 식별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간편한 실명 확인 기능 때문일 것이다. 주민번호는 현재 ‘청소년보호법’과 ‘음반비디오및게임물등급에관한법률’ 등에서 청소년 이용 가능 여부, ‘정보통신이용촉진및보호등에관한법률’과 ‘전자상거래등에서의소비자보호에관한법률’ 등에서 미성년자 식별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의 고객 신원 확인을 비롯해 유료 콘텐츠 결제 과정이나 비밀번호 분실시에도 주민번호는 결정적인 본인 식별수단이 된다.

 그런데 주민번호는 도용이나 악용 가능성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당국이 이번에 2005년 10월 이후 이를 공인인증서 등으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문제는 정책의 실효성이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확대되고 인터넷거버넌스가 현실화하고 있는 오늘날 새로운 온라인 식별수단의 개발은 중장기적인 계획 아래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번 방침이 이달 결정해서 10월부터 적용하겠다는 식으로 조급하게 추진된다는 사실은 이런 기대를 무색케 한다. 인터넷 업계와 적절한 사전 협의 등 충분한 검토와 준비작업이 있었느냐는 점도 따져볼 문제다. 당국의 방침이 발표되자마자 쏟아져 나온 업계의 우려는 이번 정책이 탁상에서 이뤄졌음을 말해 준다. 게다가 주민번호 유출 사건 대부분이 오프라인을 통해 저질러진다는 각종 통계 역시 이번 정책의 타당성에 의문을 던져 주는 대목이다.

 정책의 일관성 면에서도 허점이 보인다. 당국이 주민번호 대체수단 개발을 추진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주민번호를 전제로 하는 인터넷실명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03년 제기됐던 인터넷실명제는 요즘 들어 주무 장관이 직접 챙길 정도로 다시 정책적 화두가 되고 있다. 주민번호 대체수단과 인터넷실명제를 함께 수용해야 하는 인터넷 업계로서는 오히려 정책의 불확실성만 키우는 셈이 된다.

 업계의 현실적 불만도 변수다. 실효성이 불투명한 데도 당국이 앞장서서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기존 시스템을 변경케 하는 일은 기업에 엄청난 경영 리스크를 떠안기는 꼴이다. 이런 지적들은 결국 새 대체수단이 주민번호 이용을 못하게만 할 뿐,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주민번호 대체수단 개발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우려의 소리가 높고 비판이 빗발치는 것은 정책의 모호성 때문이다. 실제 이번 방침에는 ‘언제부터 하자, 또는 하지 말자’는 식의 조급한 업무 추진 의욕만 들어 있지 구체성이나 추진 결과에 대한 예측은 담겨 있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면 지금 당장 대체수단을 찾는 것보다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답을 찾는 게 현명한 일이다. 예컨대 주민번호 유출에 대한 오프라인 경로나 실태를 철저하게 파악해서 이를 차단하는 데 정책의 우선 목표를 두는 것이다. 그런 다음 장기적이고 보편적인 대체수단을 찾는 게 순서일 것이다.

◆서현진 디지털문화부장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