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하던 통신 시장이 다시 긴장감에 휩싸였다. 경쟁사 간 고착된 점유율과 적당한 견제로 오순도순 지내 왔던 지난 1년과는 영 딴판이다. 레드오션인 초고속인터넷 시장에 파워콤이 진입한다. 이에 따라 설립 당시부터 KT의 대항마 역할을 수행한 하나로텔레콤은 격변기에 들어섰다. ‘돈 불리기’가 최우선 순위인 외자와의 갈등으로 윤창번 사장이 물러났다.
최대 그룹 KT는 남중수·조영주 체제로 재정비했다. 대대적인 개편 바람이 예고된다. 데이콤은 탄력 붙은 실적을 바탕으로 ‘공격 앞으로’를 외치고 있다. LG텔레콤은 생존 조건과 직결되는 단말기 보조금 문제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주시할 곳은 LG의 3콤(데이콤, 파워콤, 텔레콤)이다. 이들은 지난 2분기 발군의 실적을 기록했다. 주가가 오르고 시장의 기대치도 높아졌다. 경영진도 그대로다. 뭔가 움직임이 다를 것이다.
그간 LG그룹의 통신 아킬레스건은 인적 자원 부족이었다. LG정보통신이 있었지만 제조업이다. 정책·규제·기술·소비자 대응의 통신서비스업을 이끌고 나갈 경영 인력이 한정돼 있다는 것은 치명적 약점이었다. 거대 자본이 소요되는 것이 업의 특성이다. 자칫 삐끗이라도 하면 몸통이 휘청인다. 사정이 이러니 그룹 차원에서도 선뜻 드라이브에 나서기 어려웠다.
당연히 시장은 LG의 사업 의지를 끊임없이 의심해 왔다. 비록 지난 몇 년간 절대약자로의 자리매김과 이에 따른 선순환 구조 실종이라는 ‘수업료’를 내야 했지만 LG가 얻은 것도 있다. 그중 가장 빛나는 전과는 ‘사람’을 얻은 것이다. 전문가 소리 들으면서 사업을 지휘할 경영 인력과 직원들이 양성됐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몇 백억원의 수익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 증가했다.
기업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LG의 최근 통신 기력 회복은 ‘사람’이라는 또 다른 시각에서 해석해 볼 만하다. 그룹의 대표적 전략통인 남용 사장이 완벽한 통신전문가로 탈바꿈했기에 LG텔레콤이 버틸 수 있게 됐다. 최고의 정책가였던 정홍식 사장이 기업 CEO에 적응하면서 데이콤이 살아났다. 관료에서 출발했지만 통신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박종응 사장이 맡고 나서 파워콤은 떠오르는 핵잠수함이 됐다.
이들만이 아니다. 이제는 유무선 막론하고 어느 곳에서나 몸값을 거뜬히 해내는 임직원이 즐비하다. 그래서 LG 3콤은 과거와는 다르다. 아직도 절대약세인 실탄(자금) 부족을 임직원들의 맨파워로 이겨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약점이 3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바로 재원이다. 데이콤이 광랜을 통해 아파트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마케팅 비용이 엄청나다. 파워콤 역시 소매 시장 안착을 위해선 출혈이 불가피하다. 가입자 기반 장사라 돈을 푸는 만큼 효과가 있다. 텔레콤은 보조금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3G 투자가 가로막고 있다. 선발주자들처럼 쏟아부을 처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성장동력을 잃을 수는 없다.
일부에서는 3콤의 파괴력을 M&A에 기댄다. 그러나 현실성이 떨어진다. 수천억원이 오가야 한다. 오히려 당장의 해결책은 3콤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히트상품 발굴이다. 모험성 자본이 투입되지 않고도 블루오션에 뛰어들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신시장 창출은 3콤의 지속 가능한 성장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후 야기될 모든 문제의 선결과제다. 말은 쉽지만 너무 어렵고 복잡한 과제다. 하지만 텔레콤과 데이콤은 히트상품을 제조해 본 경험이 있다. 파워콤도 이에 가세한다.
3콤이 통신판을 뒤흔들기 위해선 돈과 시간이 필요한 M&A보다는 사업방향이라는 수단이 먼저다. 현재의 3콤 경쟁력의 원천은 ‘사람’이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