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와 세계화라는 명목 아래 어디를 가든지 눈에 띄는게 외래어와 외국어이다. 과거 일본어 오염은 식민지 시대에 무참한 강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지금의 외국어 오염은 우리 스스로가 자행하고 있다. 이처럼 스스로 외국어를 남용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외국어를 많이 구사할수록 ‘있어 보인다’는 사회 통념이다.
◇실태=최근 회사이름을 한민족의 얼과 정서를 담은 우리말을 버리고 뜻도 모르는 영어로 ‘창씨개명’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유는 국제적으로 회사가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외국인들이 잘 기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영어로 창씨개명을 하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으로 믿고 있다. 지나친 영어 열풍도 언어 강점의 대표적인 사례다. 한해 1만여 명이 넘은 유학생과 ‘기러기아빠’, 사교육비의 40%을 차지하는 영어교육비 등은 과히 ‘영어 광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IT업계 역시 우리말로 충분히 바꿔 쓸 수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외국어를 그대로 쓰는게 당연한 풍토로 자리 잡고 있다.
광고기획자들은 “이국적인 이미지, 외국상품이 질이 좋다는 선입견, 한글보다 영어가 지적이고 품위있게 여겨지는 사회통념 때문에 상품명이나 설명 등을 외국어로 표현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외국어를 많이 사용할 수록 가치있게 보인다는 통념 때문에 사회주도층에서 외국어 사용을 조장하고 우리 말글을 홀대한다는 지적이다. 더욱 큰 문제는 아름다운 우리말의 가치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외면하고 남의 것을 모방하는 데 급급하면서도 조금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우리 언어 문화를 통해 왜곡된 국민의 신경증과 사회병리 현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자존심 회복해야=고유한 말과 글은 유구한 역사를 통해 전해온 전통과 문화가 담겨져 있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말과 글의 과학성과 표현 능력은 외국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한글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강대국인 중국을 비롯, 오늘날 미국에 이르면서 어느새 사대주의에 젖어 강대국의 언어를 따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토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말 살리기 겨레모임’의 이대로 공동대표는 “한글 창제 이후에도 제대로 된 국어 보급·육성정책이 없었고 주체성이 결여된 상태로 지내면서 점차 국민 자존심도 흐려졌기 때문”이라며 “선진국 문화에 대한 막연한 열등의식을 과감히 버리고 우리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우리 말글이 산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를 낮게 평가고 스스로 문화 속국이 되길 원하면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또 그 경제의 손실이 얼마나 심한지 살펴봐야 할 때가 됐다. 권상희기자@전자신문, sh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