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이통사 자율규제 외면 말라

 다양한 콘텐츠의 등장으로 야기된 청소년 문제는 그동안 일정부분 국가 주도의 등급시스템에 의해 해법을 찾아왔다. 그러나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가 확산되면서 등급시스템의 한계는 분명해졌다. 국가가 유해 콘텐츠에 대해 일일이 등급을 매기고 차단하는 게 과연 기술적으로 가능하며 비용적으로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90년대부터 미국과 일본 등에서 도입된 게 자율규제시스템이다. 사업자·소비자·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사회 전체가 신뢰할 수 있는 심의규칙이나 행동강령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적용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3년 통신사업자와 콘텐츠사업자 간에 맺어진 협정에 따라 자율심의시스템이 도입됐다. 콘텐츠사업자 단체인 한국콘텐츠산업연합회 주관아래 운영되고 있는 무선인터넷콘텐츠자율심의위원회가 바로 그것이다. 무선인터넷망 개방을 겨냥한 이 시스템은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선 지적되는 게 사업자 간 불공정성이다. 이 자율규제시스템은 당시 인터넷포털이나 콘텐츠사업자 등 외부사업자들이 이동통신사의 왑 게이트웨이를 이용하기 위한, 즉 무선망 개방 조건의 하나로 탄생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의 사전심의가 콘텐츠의 절대량을 공급하는 이동통신사는 제외하고 외부사업자들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동통신사 내부에 자체 심의시스템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동통신사가 이를 외면하면 더욱 큰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다. 자율규제가 오히려 신규사업자들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거나, 심의에 대한 권위를 의심받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동통신사의 내부 심의시스템 자체가 규제기준이 모호해 그 권위나 도덕성이 이미 여론의 도마에 올랐는 점이다. 검찰이 지난 6월 이동통신사의 콘텐츠담당자 40여명을 음란물 유통혐의로 기소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불공정성 문제는 같은 사업을 준비중인 KT·하나로텔레콤·데이콤·온세통신과 같은 유선통신사업자들에까지 확대될 공산이 크다. 기업 규모나 영향력을 따졌을 때 이들이 무선인터넷콘텐츠자율심의위원회의 자율규제시스템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규제 결과에 대한 법적 효력이 미미한 것도 지적된다. 물론 법적인 문제는 검찰과 같은 법집행기관의 보수성에도 기인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율규제시스템이 처음부터 망 운용자들의 편의주의에 의해 도입됐다는 데 더 큰 원인이 있을 듯하다.

 자율규제가 설득력을 갖기 시작한 것은 기술발전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이른바 규제 철학의 변화에 그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규제가 기존 등급시스템의 국가적 목표를 후퇴시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미국 등의 실례에서 입증되고 있다. 청소년 보호라는 규제 목표는 영원하되, 달성 방법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사업자가 무선인터넷콘텐츠자율심의위원회의 자율규제시스템에 들어와야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자율규제시스템은 사회적 신뢰와 사업자 간 공정한 경쟁이 담보된다면 어떤 형태이든, 기구가 몇 개이든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어렵게 도입된 자율규제시스템에 대해 모든 당사자가 머리를 맞대고 지적된 문제점에 대한 보완 방안이나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최근 현대원 무선인터넷콘텐츠자율심의위원장이 사업자·소비자·정부 3자가 참여하는 종합민간자율심의규제기구의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자율규제시스템의 발전과 콘텐츠산업의 미래를 함께 내다본 적절한 구상이라고 여겨진다. 이제는 정말로 이동통신사들의 자율규제시스템에 대한 적극적인 시각이 필요한 때다.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