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원천기술과 응용기술

 김현탁 ETRI 박사가 절연체에 전압을 가해 전기가 흐르는 금속으로 전이된 절연-금속소자(MIT)를 개발하면서 56년 만에 세계 물리학계의 난제를 풀어냈다. 게다가 이 금속반도체기술은 기존 실리콘반도체를 대체할 미래의 신기술로서 엄청난 잠재적 경제효과까지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48년 진공관 기능을 대체하는 반도체 개발이 발표된 이래 또하나의 역사적 기술 발표로까지 인정받고 있다. 이 절연-금속소자 개발에 따라 고온초전도나 거대자기저항 등 물리학뿐만 아니라 소자나 디스플레이 등 IT분야 전반에서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김 박사 팀은 이미 로열티를 보장받기 위해 미국·중국·유럽 등에 16개 원천 특허를 출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56년 만의 세기적 기술 개발 및 16개 원천특허 출원이 전부는 아니라면 억설일까.

 역사는 원천기술 개발만이 능사가 아니라 어떻게 이를 응용해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잘 말해 준다. 지난 85년 치러진 미·일 반도체 전쟁은 그 생생한 역사적 교훈의 사례다.

 달력을 꼭 20년 전 이맘 때의 미국과 일본으로 되돌려보자.

 1985년 6월 미국 반도체산업협회는 일본 반도체업체들이 통상법301조 이른바 슈퍼301조를 위반했다고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제소했다. ‘일본이 자국의 시장은 닫고 외국에 덤핑을 하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것. 일제 64kD램 256kD램 등이 대상이었다. 인텔, AMD 등이 가세했다. 일본은 1년여 만인 1986년 9월 제1차 미·일반도체 협정에 조인했다. 미국은 보복관세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일본은 억울하다. 일본기업은 심지어 같은 기술을 공유한 3개 미국업체에 12.5%에 달하는 로열티를 내면서까지도 수율·성능·가격 확보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일 반도체 전쟁의 내면에는 반도체 원천기술을 개발해 놓고 로열티를 팔면서 응용기술개발에 등한했던 미국의 ‘배아픔’이 숨어 있다. 결과적으로는 미국의 원천기술을 사들여 더 나은 수율의 제품과 응용기술 확보에 열 올렸던 일본을 그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 그 내막 중 하나다. 사실 ‘베껴먹기’의 대명사로 알려진 일본은 원천특허를 사다가 더욱 발전시켜 이를 능가하는 세계적 기술을 내놓은 주인공이었다.

 소니의 캠코더, 야마하의 음원칩, 니치아의 백색LED 등 지난 50년간 세계 전자산업을 주도해 온 일본전자기술의 원천은 미국의 벨연구소, TI, 페어차일드 등으로부터 나왔다. 하지만 그 결실은 일본기업이 땄다.

 20년 전의 미국과 일본 반도체산업계 모습은 김현탁 박사의 개가로 환호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결코 안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사실 우리의 대표기업 삼성전자도 원천기술에 대한 로열티를 내고 그를 바탕으로 기술을 업그레이드해 많은 이익을 보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세계 시장 점유율의 3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D램 기술은 초기에 마이크론의 기술을 가지고 시작했다. 역시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30%로 선두를 지키고 있는 낸드플래시메모리도 도시바가 원천기술 개발자다.

 우리는 미국처럼 강력한 국력으로 여타 국가가 우리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며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중국시장에서 우리 가전품을 모방한 짝퉁디자인에 대처방안조차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부와 기업은 CDMA기술개발에 이어 100억달러의 경제효과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기술을 잘 활용해 어떤 방식으로든 상업적·경제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과도 또 다르고, 지금은 20년 전과 또 다르다.

  이재구부장@전자신문,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