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美과학아카데미의 경고

 “아시아와 유럽의 경쟁자들이 과기 혁신을 통해 첨예한 분야에서 미국을 뛰어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일반인은 이를 잘 모르고 있다. 이들이 미국의 일자리·산업국가·보안에 미치는 상호연관성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미 의회의 초당적 지지를 얻고 있는 과기자문그룹 미 내셔널 아카데미의 보고서 가운데 우리가 되새겨야 할 부분을 요약하면 대강 이 정도다.

 알려진 대로 미국은 하드파워는 물론이고 대학교육 수준·우수대학 수·연구개발력·노벨수상자 수·팔리는 영화량·도서관·문화적 영향력 등 소프트파워에서도 세계 최강이다. 이러한 미국이 자성적 보고서를 통해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며 대안 마련을 외치는 모습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이 긴장할 만한 이유는 또 있다. 인도·중국에 비해 매년 배출되는 고급 연구원의 수적 열세, 비싼 일반 연구원의 몸값, 전세계적으로 열위에 있는 고등학교 3년생(12학년)들의 과기 학력 수준 등이 그것이다.

 초강대국 미국이 스스로를 낮추며 내놓은 이 보고서는 우리의 국가 경쟁력 제고와 관련해서도 시사점을 던져 준다.

 첫째, 교육을 통한 우수인력의 수급 노력없이는 누구도 지속적 성장과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세계 하위권인 12학년(고3)생 과기 평균 성적을 걱정하며 해결책을 찾고 있다. 또 과기 분야 톱클래스 학생 1만명을 길러내기 위한 장학제도 신설을 모색중이다.

 둘째, 교육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고부가 인력은 산업계에서 그만한 값어치를 할 때에만 빛을 발한다는 인식도 읽힌다. 과학기술 인력시장에서도 ‘차이나 프라이스(China Price)’로 불리는 최저공급가격이 선호되는 원리는 똑같이 적용된다. 뒤집으면 최고급 인력만이 설 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똑똑한 과학자·엔지니어의 아이디어로 신산업을 발전시켜야 미국의 현안인 ‘고급일자리 창출’을 할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의미다.

 셋째, 기존 경쟁력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과학아카데미는 이를 위해 과학기술 연구원들에 대한 감세 등 정책적 조치를 제안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든든한 지식이 축적된 미국, 거대한 IT시장·값싼 인력을 가진 인도와도 다르고, 기존 교육제도 그대로도 얼마든지 세계적 과학자·기술자를 배출하는 중국과 비교해도 불리하다. 결국 우리는 내셔널아카데미의 제안보다도 더욱 치열한 방식으로, 더 나쁜 조건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력과 지적 배경을 갖고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창의적 파괴다. 치열한 경쟁에서 선발된 가장 우수한 인력군의 단련된 실력밖에 없다.

 과기중심 사회의 기치 아래 참여정부는 과기부총리제를 신설하고 각료들의 면면에서도 이공계 모습이 두드러지는 등 외형상 짜임새를 갖췄다. 기업들도 이미 수년 전부터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인력(임원급)을 지역을 불문하고 S급이니 A급이니 해서 해외인재 모셔오기 경쟁을 벌여 온 터다. 하지만 미국처럼 젊고 우수한 능력있는 직원들을 1만명 정도 양성하려는 혁신적 방안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전제조건 중 하나가 대학에 경쟁을 통한 학생선발권과 학사재량권을 돌려주는 일이다. 손발 묶인 대학이 교육을 충실히하며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구축하고 어느 분야보다도 ‘창의적 파괴’가 필요한 과학기술계를 이끌 인재를 길러내기는 사실상 힘들다. 국가경쟁력의 요체를 과기계의 최고 인재 양성으로 본 미 내셔널 아카데미의 경고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재구 국제기획부장@전자신문,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