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정부는 지원정책을 발표하고 있는데 기업에서는 매번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소프트웨어 업계)
“수천억원을 쏟아부으려고 해도 투자할만한 SW업체가 없다”(벤처캐피털 업계)
이게 소위 말하는 ‘SW산업 도약의 원년’의 자화상이다.
지난 2월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올해에만 1230억원의 예산을 투입, 2005년을 ‘SW산업 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오는 2007년까지 소프트웨어(SW)산업 생산 30조원, 수출 30억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목표까지 제시했다. 당시엔 그동안 SW산업을 홀대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한꺼번에 만회하겠다는 정책의지까지 읽혔다.
그리고 반년이 지났다. 하지만 변한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여전히 시장은 미미하고 그나마 있는 수요는 가격후려치기에 매번 멍드는 것도 똑같다. 정부가 자신한 ‘SW제값받기’ 운동이나 ‘GS인증제품 우선구매제도’가 약발이 안먹혔다는 얘기다.
국내 SW업체들의 규모는 여전히 영세하다. 세계 시장을 이끌 만한 기술도 돈도 없다. 글로벌 플레이어 또한 전무하다. 소프트웨어를 공짜라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거기에다 소프트웨어업체를 하도급 업자쯤으로 여기는 시스템통합(SI)업체와 발주처의 인식이 소프트웨어시장의 토양을 더욱 척박하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빌 게이츠도 한국에서 사업을 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이를 모를 리 없는 정부가 지금 또 다른 히든카드를 준비중이다. 오는 12월 초에 발표할 ‘SW산업발전 기본계획’이 그것이다. 국내 SW산업의 비전과 전략을 총체적으로 담은 중장기 계획을 내놓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그런데 업계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한마디로 또 ’거룩한’ 얘기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대세다.
정책에 실효성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정책이 실효성을 보장 받으려면 일단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국내 업체들이 제대론 된 SW를 팔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면 SW산업의 경쟁력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공공시장은 그래서 중요하다. 정부가 앞장서서 시장을 열어줄 유일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 프로젝트가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사업은 크고 작은 잡음에도 불구하고 국산 SW의 대형 레퍼런스를 정부가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또 공공분야 정품 정가구매, 최저가 구매방식 및 하도급 관행 개선, 기술인증제를 통한 기술 중심의 구매 관행 정착 등도 시급한 과제다. 조달가격이 무너진 시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매년 반복되는 잡다한 정책을 시각적으로 내놓는 일을 이제 그만하자.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시장을 일구는 일에 정책 목표를 두자. 우리와 비슷한 환경에서 SW강국 신화를 이뤄낸 해외 사례가 의외로 많다. 인도는 높은 자본력과 기술을 요하는 패키지SW로는 경쟁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통신망을 활용한 원격 IT서비스에 집중했다. 또 이스라엘은 미국 자본을 발판으로 패키지SW와 솔루션 분야를 선택했다. 아일랜드는 다국적기업 유치의 부산물로 세계적인 SW 생산기지를 마련해 감자 밭에서 SW 성공신화를 이뤄냈다.
우리가 어느 방향을 선택할지는 차후 문제다. 우리 업계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다 정책의지를 얹는다면 못할 것도 없다. 이를 위해 정통부에 진흥국이 필요하다면 신설하자. 대신 담당과장을 1년도 안돼 바꾸는 일은 더 이상 되풀이 하지 말자. 그런 정책마인드로는 어림없다.
지금은 모든 제품이 소프트웨어(SW) 없이는 제 구실을 못할 뿐만 아니라 SW가 그 제품의 부가가치를 결정하는 지식기반의 경제 환경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빌게이츠가 성공할 수 있는 SW 토양을 보고 싶다.
김경묵부국장@전자신문, km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