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지스타에는 아케이드가 없었다

일산 한국국제종합전시장(킨텍스)에서 지난 주말 막을 내린 게임쇼 ‘지스타 2005’에 대해 나름의 ‘여론조사’를 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사람에게도 물었고 몇몇 지인에게 전화로 소감을 들어봤다. 국제적인 게임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국내 최대 게임쇼로는 손색이 없다는 평가였다. 운영상의 미숙함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는 말로 평가를 끝냈다.

 마지막으로 한 통화만 더 해보자고 전화를 했던 한 지인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스타에는 아케이드 게임이 없다’였다. 아케이드 게임은 오락실용 게임기를 말한다. 그는 “일본의 잠바쇼는 물론이고 유럽의 유명 게임쇼에 비해 온 가족이 몸을 움직이면서 체험할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기가 부족하다는 것은 국제적인 게임쇼로서는 과목낙제”라고까지 했다. 사족이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온라인 게임업계 종사자라는 점을 밝혀둔다.

 행사를 준비한 주최 측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사람의 지적은 정확하다. 전세계 아케이드 시장 규모는 2003년을 기준으로 294억달러 정도로 전체 시장의 54%를 차지한다. 비디오 게임이 139억달러, 온라인 게임이 62억달러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우리나라가 온라인 게임에 강하고 아케이드 게임은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변명이 나올 법도 하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역시 2003년을 기준으로 하면 국내 아케이드 게임(게임기 매출액만)은 3118억원으로 24% 정도를 차지한다. 온라인 게임은 7651억원으로 전체의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비디오 게임이 2229억원 규모를 보였다.

 지스타 주최 측이 이 같은 기본적인 통계 수치를 모를 리가 없다. 전세계 게임산업의 50% 이상, 국내 시장의 24%를 차지하는 아케이드 게임이 지스타에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던 것은 주최 측의 과실이라기보다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케이드 게임 분야의 대부격인 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자 출신인 그는 대뜸 경품 게임기 이야기를 꺼냈다. 성인 오락실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경품 게임기는 경마 게임 등을 해서 점수에 따라 경품을 지급받는 오락기다.

 “경품 게임기가 아케이드 게임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시장 규모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올해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성장했다고 할 만큼 유례없는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왜 지스타에는 아케이드 게임기가 없었는지 물었다. “보여 줄 게 없다. 사회적으로 사행성 게임기로 여겨지는 경품 게임기를 들고 가봤자 누가 구경하러 오겠는가.”

 경품 게임기 때문에 국내 아케이드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사행성에 발목이 잡혀 산업과 시장이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 결론인 듯하다. 30분 가깝게 통화를 하고 나서 지인은 경품 게임기는 아케이드 게임의 기회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온라인 게임에 편향된 산업구조를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까지 했다. “현재의 경품 게임 산업은 초기 단계로 사행성은 그 부작용이다. 사행성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긋고 비즈니스로 연결할 수 있도록 환경과 제도 개선이 이뤄진다면 온라인 게임에 버금가는 수출전략 상품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지인은 최근 문화관광부가 발족한 ‘2010 게임산업 전략위원회’가 아케이드 게임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을 짜고 있다고 귀띔했다. 위원회가 2010년 세계 3대 게임강국 실현을 위한 전략을 짠다면 아케이드 산업이 핵심으로 포함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출발이 사행성의 덫에 걸린 경품 게임기라는 점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위원회가 경품 게임을 건전화하고 경품 게임기 산업을 활성화하는 전략을 마련한다면 내년 지스타에서는 아케이드 게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창희 디지털문화산업부장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