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일본發 `가격 쇼크`

디지털 가전 가격을 최고 35%까지 인하해..

연말 수요 폭증에도 불구하고 LCD TV 등 최신 가전제품 가격인하를 내세운 한국과 일본 양국 가전업계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최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가전업계가 PDP TV·LCD TV·MP3P 등 폭발적 수요를 보이는 디지털 가전 가격을 최고 35%까지 인하해 팔고 있다. 이 같은 일본 업계의 가격인하 트렌드가 현실화되면서 세계 DTV 가격을 주도하던 한·일 DTV업계의 공식이었던 ‘1인치=100달러’가 70달러 선으로 붕괴되면서 ‘1인치=50달러’ 시대 도래까지 점쳐지고 있다.

 서울에서는 소니가 40인치 TV를 430만원에 팔았다. 이에 삼성과 LG도 동급 LCD TV의 출고가를 무려 20%나 낮췄다. 교토 대형 가전 양판점에서 판매되는 샤프의 32인치 LCD TV는 약 22만3000엔, 마쓰시타의 42인치 비에라 TV는 약 32만엔으로 상반기 대비 10%나 가격이 내렸다.

 이는 우리 전자 IT업체가 극복해야 할 첫 번째 쇼크는 그동안 중국의 저가 공세였지만 이제는 일본업체들로부터 오는 2차 가격인하 쇼크라는 점도 보여준다.

 이 상황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IT공룡들과 겨루는 삼성·LG 등은 물론이고 산업계의 뿌리를 이루는 중소기업들까지 살펴봐야 할 시점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대기업들조차 제품가격을 인하하고 있는 데다 중소기업들도 뒤를 따르고 있다. 일단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소업체들도 DTV 가격을 낮춰야 한다. 대만산 모듈 등으로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이 또한 미봉책이다. 우리는 이미 대만산 모듈로 조립한 PC를 통해 충분히 경험해 봤기에 그게 답이 아님을 안다.

 월드컵 때만 해도 40인치 DTV 가격은 2000만원을 호가하는 제품으로 사치품이었다. 이제는 소형차량의 절반가격에도 못 미치는 390만원에 팔리는 제품까지 나왔다.

 우리 중소가전 제조업체들은 이겨낼 수 있을까. 이미 일본에서 한 차례 파고를 거쳤기 때문에 이제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코앞에 다가온 일이 됐다. 1년 전에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했던 일본의 샤프가 자국 내 시장 가격에서 악전고투하면서 1년 만에 재기했다. 후나이라는 중소 가전업체는 생산의 70%를 중국에 아웃소싱하는 등 그야말로 살을 깎는 혁신을 통해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 언론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반면 소니를 필두로 한 대다수 일본 가전업체는 모조리 적자를 냈거나 수익악화를 보였다. 가격인하 경쟁에서 뒤진 파이어니어가 PDP TV 생산라인 일부를 중단했고 추가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올림푸스·샤프는 MP3P·DVD리코더 생산을 중단했다. 히타치와 소니는 올 연말 영업 결과를 보고 PDP TV와 MP3P 전략을 새로 짜며 경우에 따라 사업 철수도 고려한다는 배수진을 쳤다. 바로 지금이 우리 정부와 전자업계, 특히 중소 전자업체들이 격변하는 글로벌 공급망 시대의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토머스 프리드먼은 델 노트북PC 생산궤적을 추적해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저서에서 “공급망으로 연결된 기업들이 있는 국가들 간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며 ‘델공급망 이론’을 펼쳤다. 하지만 이들 기업 간에 벌어지는 치열한 비즈니스 전쟁에 따른 대응책은 각자의 몫이다.

 지난해 12월 비즈니스 위크는 ‘미국인에게 가장 무서운 3개의 단어가 이른바 ‘차이나 프라이스(The China Price)’라고 했다. 최근 상황은 우리나라 첨단IT 기업인에게도 그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게 한다.

 우리 전자업계에 새로이 등장한, 가장 경계해야 할 3개의 단어가 ‘재팬가격(The Japan Price)’라고 한다면 억측일까.

◆이재구 국제기획부장@전자신문,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