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아듀 음비게법

 “음비게법이여 잘 가거라.”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관한법률(이하 음비게법)은 음반·영상·게임 3개 문화콘텐츠 산업을 관장하는 모법이다. 지난 67년 처음 제정돼 그동안 십여 차례 개정됐다. 30여년에 걸쳐 진행된 음비게법의 개정 과정에는 문화산업의 어제와 오늘이 담겨 있다.

 처음 법이 제정될 당시 법률 명칭은 ‘음반에관한법률’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LP·음악 테이프 등이 문화콘텐츠 산업의 최강자 자리를 차지했던 상황을 반영한 결과다. 세월이 조금 지나 90년대에 들어서자 비디오 테이프가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문화부는 음반의 확대 개념으로 프로테이프 산업을 해석하고 기존 음반법의 틀을 프로테이프에 그대로 적용했다.

 세월이 조금 더 흘러 이번에는 게임이 문제가 됐다. 문화부는 이번에는 프로테이프의 개념을 확대했다. 멀티미디어적인 데이터를 담은 미디어가 게임이라는 논리였다. 결국 게임은 비디오를 아버지, 음악을 할아버지로 삼게 됐다. 그래서 현재의 음비게법이 99년 2월에 탄생했다.

 이변이 없다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음악·영상·게임 3개 분야의 법률이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 음반은 ‘음악산업진흥에관한법률’로, 게임은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로 새로 태어난다. 비디오는 기존 영화진흥법에 포함돼 ‘영화및비디오물에관한법률’로 확대 제정된다.

 향후 고시 절차와 시행령 및 규칙 제정 등의 과정이 남아 있지만 음비게법은 정해진 폐기 절차를 밟게 된다. 음비게법의 개정이 문화산업 발전의 궤적을 보여준다면 폐기는 정부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선 음비게법의 폐기는 문화부가 그동안 견지해온 미디어 중심의 문화산업 정책을 폐기할 것을 공식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음반이 음악산업으로 바뀜에 따라 디지털 파일이나 온라인 음악 서비스 등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음악 콘텐츠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게임 역시 기존의 음반 테두리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산업 형태로 인정받게 된다. 문화산업 관련 3개 법안이 모두 진흥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 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겉으로는 진흥법을 표방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규제라는 음비게법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 받았다는 느낌이다. 각 분야별로 ‘그 나름대로의 진흥책을 담았다’고 하지만 새로운 내용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번 부문별 관련법 제정에 있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산업진흥법안을 예로 들면 등급 심의 주체를 기존의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에서 신설되는 민간기구인 게임물등급위원회로 이관한다는 것 이외에 특별히 눈에 띄는 대목이 없다. 오히려 ‘사행성 게임물’을 게임산업진흥법의 테두리에서 제외함으로써 새로운 논란거리를 자초했다. 문화부는 장관령에 사행성 게임물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마련, 아케이드 게임 업계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할 방침이지만 게임업계는 문화부가 아케이드 게임을 버린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앞으로 제정될 시행령의 내용에 따라 현재 경품 게임을 제공하고 있는 오락실 업주의 상당수가 사행행위에 대한 단속법 등에 의해 강력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음비게법의 폐기는 대세이고 명분이 있는 만큼 새로운 부문별 법률 제정에 찬성표를 던진다. 본 회의 상정을 앞둔 시점에서 3개 법률안에 대해 재검토를 하라는 주장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 상황에서 문화부에 한 가지만 부탁한다. 앞으로 만들어 낼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라도 산업계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진흥책을 담아 내길 주문한다. 적어도 산업계로부터 모법보다 시행령이 더 낫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 역시 작은 힘이나마 보탤 것이다.

이창희 디지털문화부장@전자신문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