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 한 호텔에서 한국어뮤즈먼트산업협회(KAIA) 창립총회가 열렸다. 정영수 초대 회장은 창립식에서 “구심점 없이 움직이던 아케이드 업계가 뭉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며 업계의 ‘합심’을 누차 강조했다.
과거에 게임산업개발원의 수장까지 지냈던 정 회장이니만큼 게임 산업계의 현황과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정 회장이 협회 출범과 함께 ‘업계의 합심’을 강조한 것은 역으로 이합집산하고 있는 게임 업계의 현실을 웅변해 준다.
KAIA 설립 의미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에 대한 게임 업계의 시선은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미 있는 단체에 하나 더 늘어난다는 차가운 반응도 있다. 당장 KAIA의 설립으로 아케이드 업계에서만 해도 관련 단체가 최소 4개 이상으로 늘어나게 됐다. 이는 지난 13일 창립한 한국아케이드게임산업협회를 포함한 수다.
아케이드 분야의 한 원로는 “단체의 잇단 설립은 자칫하면 정부에 대한 정책적 대응에서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해 산업계 전체의 이익에 반할 우려가 있다”고 충고했다.
실제로 게임 업계는 ‘사행성’ 문제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게임산업의 새 틀을 짜는 ‘게임산업진흥법’의 국회 통과도 눈앞에 있다. 이러한 때에 협회는 정부와 담판을 벌여 게임 업계 전체의 이익을 관철하고 시민단체와 함께 게임문화 조성에 앞서야 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정부나 시민단체가 게임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협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기 때문이다. 1월 현재 문화관광부와 정보통신부 등을 주무부처로 두고 있는 게임 단체가 10여개에 이른다. 온라인·모바일·아케이드 등 게임 플랫폼 별로 3∼4개씩 중복돼 있는 셈이다. 말 그대로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올라갈 판이다.
통합협회 설립이 시도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지난 2004년 4월 한국게임산업협회 설립이 추진된 것은 이 같은 상황 인식에서 비롯됐다. 당시 김범수 초대 회장은 “협회 출범의 가장 큰 의미는 통합”이라며 게임산업 구심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천명했다. 지난해 4월 바톤을 이어받은 김영만 현 회장 역시 ‘대통합’의 기치를 내걸었다. 협회 설립 1년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산업계의 모든 구성원이 필요성에 절실히 공감하면서도 실제로 통합협회가 구성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문화부 게임산업과장을 역임했던 한 지인은 “플랫폼별로 이해관계가 다른데다 통합협회에 들어가 용의 꼬리가 되기보다는 닭머리가 되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무부처의 과장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도 문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극복되지 못할 상황은 아니다. 산업계 내부에 이해 관계가 다른 집단이 많아도 통합협회를 운영하는 분야는 적지 않다. 게임의 사촌형제쯤 되는 인터넷 분야의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이하 인기협)는 업종별 통합협회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00년 4월 설립된 인기협에는 인터넷 포털을 비롯해 결제·콘텐츠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분야의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인기협은 그동안 인터넷실명제·개인정보 보호 등 굵직굵직한 사안에 대해 정부나 시민단체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해 인터넷 업계의 이익을 이끌어내 왔다.
KAIA의 설립으로 게임업계에 내재한 통합협회 논의는 다시금 고개를 들 것으로 생각한다. 정영수 회장을 비롯해 KAIA 관계자에게는 죄송하지만 이것이 새로운 통합협회 설립을 위한 전주곡이 됐으면 한다. 당장 통합협회 설립이 불가능하다면 급한 정책적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게임협회 전체가 참여하는 이슈별 협의회라도 구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기협이 운영하는 ‘이슈별 6대 협의회’를 벤치마킹해 보는 것도 좋은 솔루션이 될 것이다.
디지털문화부·이창희부장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