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파워IT코리아를 위한 전제

 세계 최강의 한국 IT산업의 약점을 이야기할 때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게 미국 퀄컴이다. 세계시장에서 ‘명품’ 대접을 받는 한국의 휴대폰이지만, 한 대를 팔 때마다 원천기술을 가진 퀄컴에 로열티를 5% 가량 꼬박꼬박 내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도 유행처럼 한번 일었다가 사그라진다. 워낙 휴대폰 신드롬에 정부나 기업, 국민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해 본다. 휴대폰만의 문제는 아니다. 원천기술을 갖지 못한 대부분의 한국 IT산업은 화려한 겉모습과는 정반대로, 들추고 싶지 않은 이면이 있다. 세계 시장을 선도한다는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 LCD)나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등의 국산화율은 40%, 2차 전지는 10∼20% 수준이다. 실제 조사자료에 따르면 IT산업의 부품·소재 국산화율은 56% 수준이다. 제조업 평균인 70%보다 크게 떨어진다. 이쯤되면 일각에서 한국의 IT산업이 세계 최강이라는 것은 광대노릇 아니냐고 되물어도 잘못이라고 나무랄 일은 아닌 듯싶다.

 부품이나 소재 업계에서는 국산화의 당위성에 대해 얘기할 때 보통 ‘가마우지론’을 많이 이야기한다. 가마우지가 잡은 고기를 어부가 가로채듯이, 한국 업체들이 완제품 생산을 통해 번 돈이 해외 특히 일본의 부품·소재기업들의 지갑만 불려준다는 비유다. IT제품의 수출이 늘어날수록 부품이나 소재 수입 또한 함께 늘어난다. 그러나 전자부품이나 소재의 국산화가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역수지를 개선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기존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컨버전스 트렌드에 대응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토대로 신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IT코리아를 세일즈하고 있는 이 순간, 일본의 부품·소재 업체들은 이제 한국 기업에 최신 소재는 주지 말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본의 삼성 견제론 중 하나로 일본 장비 업체들이 삼성에 공급을 끊어 삼성의 보급로를 차단해야 한다는 협박 비슷한 이야기마저 흘러나온다. 삼성과 LCD부문에서 협력하고 있는 소니가 일본 기업들에 왕따를 당한다는 소식이 현해탄 건너에서 들려오기도 한다. 따라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휴대폰 등 이미 세계 톱 수준의 경쟁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더는 추격자가 아닌 혁신선도자로서의 위상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바탕은 바로 부품·소재 분야의 기술력이다. 부품과 소재는 디지털시대에 최첨단 무기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21세기 IT코리아의 신화는 세트업체 중심의 대기업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부품·소재 업체들은 그룹 계열사를 제외하곤 대부분 영세하다. 업력도 짧다. 미국·일본·독일 등 산업 강국의 대표적인 부품·소재 업체들이 수십년 이상 화학·전자·재료 분야에서 업력을 쌓은 것과는 큰 대조를 보인다. 저변이 되는 기초과학 분야의 발달도 선진국에 비해 우리의 수준은 한참 떨어진다. 이 같은 후발업체의 약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구조적인 상황에서 삼성과 LG 등 대형 세트업체에 목매는 현재의 구조로는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메아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 단기적인 시야가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부품·소재산업을 키워야 하는 이유다. 대형 세트업체들 스스로 부품이나 소재의 단가 인하를 통한 단기적 수익 향상에만 급급한다면 IT코리아의 미래는 없다. 이것은 곧바로 IT코리아의 몰락을 의미한다. 완제품 위주의 정부 정책에 대대적인 수술이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대기업들 자신도 부품·소재 업체를 하청업체가 아닌 동반자로 인식하고 공동 개발 및 선행투자를 해야 한다. 가시화되고 있는 자원전쟁 못지 않은 부품·소재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IT코리아의 명성이 유지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명심하자.

양승욱부국장@전자신문, sw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