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왕의 남자와 스크린 공영제

 ‘왕의 남자’가 드디어 관람객 1000만명을 넘어섰다.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스크린쿼터) 축소에 따른 영화계의 위기 위식이 팽배한 시점에서 이뤄낸 성과여서 더욱 의미가 깊다.

 영화계는 스크린쿼터가 정부 방침대로 축소됐다면 ‘왕의 남자’ 같은 히트작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왕의 남자’의 성공을 스크린쿼터 축소 철회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영화계가 내놓는 논리는 ‘왕의 남자’는 전체 제작비가 44억원에 불과하고 유명 스타도 없는 ‘범작’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이전에 1000만명을 돌파한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처럼 한국판 블록버스터적인 요소가 전혀 없었다는 것. 대박의 가능성이 없는 영화는 극장에서 외면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며 그나마 스크린쿼터가 절반으로 줄어들면 제2, 제3의 ‘왕의 남자’는 아예 극장에 걸리지도 못할 것이란 주장이다.

 반대의 논리도 있다. ‘왕의 남자’ 1000만 돌파는 우리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의 힘이 만든 성과라는 것이다. 거대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와 국내 최대 극장체인인 CGV는 처음 개봉할 당시 이 영화를 범작 수준으로 판단하고 그 정도의 대우밖에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스크린도 개봉 당시에는 전국 전체 스크린의 15% 수준인 250여개밖에 할당되지 않았다. 많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1000만을 돌파한 영화치고는 시작은 초라했다. 영화 팬들의 입소문이 나면서 ‘왕의 남자’는 스크린 수를 최대 397개까지 늘리면서 대업을 달성한 셈이다.

 대형 배급사와 거대 극장체인이 주도하고 있는 우리 영화 산업계에서 ‘왕의 남자’가 작품성과 관객의 힘으로 의외의 대박을 터트렸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 두고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에 따른 시사점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동일한 팩트에 대한 동전의 앞뒤 면만 보는 해석일 따름이다.

 ‘왕의 남자’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관객 1000만명의 기록을 달성한 지난 12일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감독은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의지를 넘은 관객들의 의지로 1000만명을 달성했지만 ‘왕의 남자’가 스크린쿼터 축소를 위한 경제논리의 빌미로 사용되는 것 같아 죄스럽고 안타깝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왕의 남자’와 스크린쿼터 문제의 접목점이 스크린 수에 있다는 점은 너무도 당연한 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쿼터 축소 논쟁이나 해결 방안 등과 관련해 실제로 스크린을 쥐고 있는 극장업계는 빠져 있다. ‘왕의 남자’의 히트로 가장 많은 이익을 얻는 극장체인들은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해 무관심해 보인다. 정부의 스크린쿼터 대책에도 정작 극장업계의 구미를 당길 당근은 물론이고 채찍도 없어 보인다.

 물론 극장체인들이야 우리 영화가 됐든 외국 영화가 됐든 영화관에 내걸어 일정 수익만 나눠가지면 된다는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극장 영화의 배급 및 유통체계상 극장은 사실상 없어선 안 될 필수적인 공공재 성격을 갖고 있다. ‘왕의 남자’에서 볼 수 있듯이 극장체인들은 자칫하면 국민의 좋은 영화 볼 권리를 막을 수도 있는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다. 더욱이 CJ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라는 3개 극장체인이 국내 전체 스크린의 40%에 육박하는 극장을 과점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부당경쟁의 개연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대형 극장체인이 자사와 관계가 있는 대형 배급사의 영화를 우선적으로 극장에 걸 경우 제2의 ‘왕의 남자’는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스크린쿼터의 축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결정으로 여겨진다. 이제는 1000만 관객의 역동적인 힘을 우리 영화 산업의 발전으로 연결해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관계당국은 당연히 그 해결책을 영화 체인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당장 거대 극장체인이 특정 관계에 있는 배급사의 작품을 상영하는 비율을 제한하는 ‘스크린 공영제’라도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일 것이다.

디지털문화부·이창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