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돌아온` 유영환

 사람이 들고 날 때의 느낌이란 대개 비슷하다. 예고 없는 개각으로 물러난 각료들이 야인(野人)으로 돌아갔음을 절감하는 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는다. 경험자들의 이야기다.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과거에는 개각이 발표되면 제일 먼저 장관 자택에 설치돼 있던 ‘경비전화’부터 떼어갔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매일 새벽 찾아오던 운전기사가 안 보인다. 마땅히 갈 곳도 없다. 20∼30년간 출근에 길들여진 사람이니 이때의 허전함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비로소 “아! 내가 물러났구나”란 말이 나온다.

 들어갈 때는 처지에 따라 약간 다르다. 현직에서 곧바로 입각했다면 모르되 산하 단체나 기관 등에서 들어가는 사람들은 의외의 ‘각오’가 생긴단다. “(개각 소식에) 처음에는 영광스럽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그 다음엔 어찌된 영문인지 ‘손 봐 줄’ 후배 한두 명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한다. 경제부처 차관보를 끝으로 유관기관장에 나갔다 입각한 사람이었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부처 후배들 행동 중 섭섭한 점이 많았거든. 외곽에 있다고 선배 대접을 별로 안해 주는 것 같아 속도 상했지.” 하지만 첫 출근 때 모든 것이 ‘싹 잊히는 것’이 희한하다고 덧붙인다. 이런 걸 두고 인지상정이라 하나 보다.

 유영환 한국금융지주 부사장이 정보통신부 차관으로 전격 입성한 것이 화제다. 대부분 ‘놀랐다’고 한다. 그는 노준형 장관과 행시 21회 동기생이다.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함께 시작했다. 정통부로 옮겨와서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외모와 컬러는 확연히 구분되지만 둘의 관계는 ‘동반자적 친구’ 정도에 해당한다. 더구나 유 차관은 1급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입각한 드문 사례다. 이 때문에 노 장관은 청문회에서 곤혹스러움을 맛봐야 했다. ‘동기생 챙기기’라거나 ‘코드 인사’라는 지적에 시달렸다.

 하지만 ‘챙겨주려면’ 다른 자리가 더 어울린다. 오히려 동기가 차관이면 조직 지휘에 부담만 더한다. 이런저런 구설을 예상하면서도 그를 차관에 영입한 것은 노 장관의 업무의욕이 그만큼 왕성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통부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대내외 위기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신임 장·차관은 경력만 비슷할 뿐 업무적으로는 ‘상호 보완재’ 성격을 갖는다. 노 장관은 ‘남의 말을 많이 듣고 합리적으로 조정, 결정하는 스타일’이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유 차관은 ‘컬러가 분명하고 논리와 상황판단력이 발군’이다.

 금융인으로 변신한 초기, 유 부사장에게 물었다. “관료생활을 접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가?” “자의니 미련은 없다.” “기왕이면 정통부나 산업자원부 관련 기업으로 (그는 양 부처 정책국장을 역임했다) 전직하는 것이 좋았을 텐데….” “새로운 시작과 도전이 필요했다.”

 1년쯤 지나 다시 물었다. “기업인 적응은 끝났나?” “많이 배우고 있다. 길도 보이고.” “무얼 배웠나?” “겸손함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나를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일을 되게 하는 첩경이다. 그것이 ‘돈이 지나는 길’이기도 하고.” 평생 ‘갑’으로만 살아온 사람이 ‘을’의 처지를 헤아리게 된 것이 그의 기업인 변신 제1 소득이었다.

 유 차관의 복귀는 동료 후배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각료급 인재풀의 확산과 모든 사람에게 열린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다. 규제 당사자인 기업 최고경영자가 정통부 장관으로 신분이 바뀐 적도 있다. 올곧은 관료생활을 통해 장·차관에 오른다면 좋겠지만 기업경험, 실물 경험도 각료 조건에 덧붙여지는 세상이다. 아니 현장 경력이 오히려 우대받는 풍토가 됐다. 그래서 ‘을’의 경험자 유 차관이 노 장관과 콤비를 통해 빚어낼 새로운 정통부가 더욱 주목받는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