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일자리 경제학

지난달 27일 경기도 파주에서 있었던 LG필립스LCD(LPL)공장 준공식은 세계 최대 LCD TV용 패널 공장이라는 점에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서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2012년까지 4만3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투자’라는 부분일 것이다.

 우연의 일치치곤 너무 기가 막히게도 경총은 바로 전날 ‘대중국 투자확대 고용 파급 효과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이것이 공장 준공을 더욱 의미심장하게 만들었다. 요지는 지난 1995년부터 10년간 우리나라의 공장 약 5000개가 중국으로 건너갔고 이로 인해 21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향후 10년간 36만개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10년 이상 제조설비의 해외 이전에 따른 ‘공동화’의 두려움을 얘기해 왔지만 정확한 상황 파악과 뾰족한 정책 대안을 찾지 못했다는 증거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보고서는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지금까지도 일자리와 관련된 투자 계획과 희망을 주는 사인은 많이 있었지만 우리가 눈을 뜨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자본을 가진 기업은 언제든지 투자할 수 있다’며 투자를 당연시하는 낙관적 견해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LPL 파주공장 준공 이전에도 굵직한 투자계획들이 나왔지만 우리는 ‘세계 최대’에만 눈이 멀어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미처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파주공장을 계기로 되새겨보면 삼성전자의 아산탕정 LCD단지는 물론이고 오는 2012년까지 기흥-화성에 총 34조원을 투입하는 세미콘 클러스터 조성 구상 역시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한편 파주 LCD단지의 준공을 계기로 두 가지가 새삼스러운 의미로 다가온다.

 그 하나는 LPL 파주공장이 경쟁자인 대만 LCD 산업계로 넘어갔을 경우 발생했을 이적(利敵) 효과를 막았다는 아주 당연한 부분이다. 여기에다 후방부품업체들까지 확보했다는 점이 자랑이다. 그 두 번째는 ‘행정의 묘’를 발휘해 거미줄 규제를 극복한 점이다. 경기도지사가 LCD단지를 파주에 유치하기 위해 청와대 긴급회동까지 마다하지 않은 점이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도지사 측근이 말했다는 ‘경기도민의 30년 먹거리’론도 결코 과장만은 아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해외진출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고 주문하고 싶다. 장기 전략적 관점에서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 개척을 위한 것이라면 과감히 나서야 한다. 하지만 일자리와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설비투자라면 마지막까지 국내 유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최근 현대그룹회장의 구속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 각국의 투자 상대국이 보이는 반응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외신은 6월 총선을 코앞에 둔 이르지 파로우베크 체코 총리가 10억달러 규모의 체코 현지 현대차 공장 설립을 확정짓기 위해 이달 한국을 방문, 계약을 마무리할 결심을 밝혔다고 전했다. 기아차 공장이 들어설 미국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시의 빌리 헤드 시장도 기자회견에서 “기아차 공장이 6월 공사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며 “사업 자체에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압박을 가할 정도다.

 이쯤 되면 ‘일자리’는 경제문제를 넘어서 가히 ‘일자리 정치학’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만하다. 말이 나온 김에 챙겨볼 ‘일자리 정치학’ 과목의 숙제에는 지난 2∼3년간 그리도 많았던 해외 유수 기업들의 한국 내 연구개발(R&D)센터 설립약속 건도 포함될 것이다.

 파주의 LCD 단지 준공과 경총의 보고서는 해외로 넘어가고 있는, 우리 일자리 구하기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계기라 할 만하다. ‘일자리 경제학’은 투자가 있어야 일자리가 있고, 일자리가 있어야 세금 납부와 양극화 해소 등이 가능하다는 점도 일깨워 준다. 또 필립스가 한국 투자에 반대했던 일화는 ‘거미줄 규제’를 반길 기업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도 다시금 일깨운다. (이재구 국제기획부장@전자신문,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