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전자정부는 없다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이 얼마 전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는 충격적이다. 단순히 우리나라의 순위가 작년보다 9단계나 떨어진 38위로 추락해서가 아니다. 하락폭도 문제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이유다. 주요 평가영역 중 ‘발전인프라’ 순위는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정부행정효율성’이 작년 31위에서 무려 16단계나 떨어진 47위로 밀린 것이 주원인이었다.

 딴 것도 아니고 ‘정부행정효율’ 면에서 크게 뒤져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급락했다는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된다. 그동안 우리가 목청을 높여 온 전자정부 사업이 도대체 뭔가. 바로 정부행정 효율화가 그 요체다. 국민의 정부 이후 ‘전자정부 사업’이라는 이름하에 투입된 국가 예산만도 2조5000억원에 달한다. 더욱이 지금의 참여정부는 전자정부를 ‘혁신의 산실’로 보고 물심양면으로 많은 공을 들여온 터였다. 그러기에 IMD의 결과는 너무도 참담하다.

 결론은 간단하다. IMD의 조사방법이 잘못됐든지, 아니면 우리가 자랑하던 전자정부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얘기다. 불행히도 IMD의 조사방법을 놓고 그 어느 나라도 항의를 했다는 소식은 없다. 결국 수조원이 투입됐고 앞으로도 그 이상 투입될 우리나라 전자정부의 부실성만 드러난 셈이 됐다.

 누구의 잘못인가. 정부다. 전자정부 사업의 가장 큰 실패원인은 프로세스(시스템)의 개혁이 뒷따라주지 못한 탓이다. 그 많은 투자로 인프라는 어느 정도 갖춰졌지만 이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서비스로 구현시킬 수 있는 시스템은 ‘빵점’이나 다름없다. 현행 법·제도·관행 등의 후진성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후진성에 기대서 부처별로 자기 조직 살리기 내지는 부풀리기에 골몰해 온 공직자들의 마인드 때문이다.

 우리 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토지대장과 건축물대장의 예만 봐도 그렇다. 현행 전자정부 시스템상 토지대장 DB정보는 행정자치부가, 건축물대장 정보는 건설교통부가 관리한다. 종합토지세 등 각종 과세를 위해서는 이들 정보의 통합화가 필요하다. 기술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낀 원죄로 인해 현재 이들 DB의 통합화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여전히 민원인이 서류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는 몇 단계의 프로세스를 거쳐야만 한다. 행정효율화의 기본인 원스톱 행정서비스는 남의 나라 얘기가 됐다.

 관세청 EDI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식약청은 작년부터 EDI로 수입식품을 신고하던 시스템을 웹방식으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사용자들은 1건당 3000∼4000원씩 들어갔던 EDI 수수료를 안 내도 된다. 반면 관세청은 아직도 통관·물류시스템은 여전히 EDI를 고수한다. 주관기관인 산자부가 이런 저런 이유을 들어 웹방식을 거부하고 있는 탓이다. 잡음을 원치 않는 행자부도 이를 묵과하고 있다.

 전자정부를 둘러싼 정책의 난맥상은 예상 외로 심각하다. 있어야 하는 것들은 없고 없어야 하는 것들은 있는 전형적인 난마 형국이다. 먼저 전자정부엔 실패 사례가 없다. 그많은 사업 중 실패 사례가 공식적으로 보고된 것이 한 건도 없다. 실패로부터 얻는 교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개연성을 높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책임 소재도 없다. 그저 여기저기서 경쟁적으로 벌이는 일만 많다. 부처별로 공유도 제대로 안 되는 포털을 하겠다고 나서는 게 단적인 예다.

 반면 없어야 하는데 있는 것도 많다. 우선 조직 간 갈등이 있고, 또 성과주의에 따른 조급성으로 인해 일하는 방식의 정비보다는 무조건 정보시스템 구축을 우선시하는 사상누각이 만연해 있다.

 지금 이 정부는 ‘차세대 전자정부’의 모형을 놓고 고심중이다. e정부를 넘어 u정부, 더 나아가 모바일 정부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앞날은 불투명하다. 포장을 바꾼다고 실체가 변하지는 않는다. 정책의 난맥상을 끊는 강도 높은 처방이 없는 한 명실상부한 전자정부는 없다.

김경묵부장@전자신문, km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