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SKT의 용감한 결정

SK의 중국 내 지명도를 보여주는 ‘자그마한’ 사건이 하나 있다. 1년 전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열렸던 ‘상하이포럼’ 때의 일이 그것이다. 포럼 마지막날 하이라이트 행사로 최태원 회장이 기조연설을 위해 대강당 연단에 올랐다. 그런데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700여명의 교수와 학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던 대강당 좌석이 절반으로 줄었다. 바로 전 연설자는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리 전 총리는 명예박사학위 수여 기념 특별강연자 자격이었고 최태원 회장은 포럼의 스폰서 자격이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참석자 절반이 스폰서의 연설 대신 아래층에 마련된 뷔페 식당을 선택한 것이다. 만약 그 프로그램이 빌 게이츠나 에릭 슈미트의 순서였다 해도 그랬을까.

 SK그룹이나 최태원 회장을 낮춰 보자는 게 아니다. 아마 우리나라의 어떤 기업총수라도 이런 황당함에서 자유로운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원래 중국인이 그렇고 중국 땅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얘기다. 바로 그런 점에서 엊그제 SK텔레콤이 차이나유니콤의 전환사채(CB) 10억달러어치를 매입하기로 한 것은 정말 놀라운 결정이다. 놀랍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라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용감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차이나유니콤은 가입자 1억3000만을 거느린 중국 제2의 이동통신사업자다.10억달러를 3년 만기 후 주식으로 전환하면 6.6%의 지분이 생긴다고 한다. 이 지분이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중국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시드머니가 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벌써 나오고 있다. 물론 SK텔레콤의 주력기술이 2세대 CDMA라거나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을 감안하면 중국 내의 행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런 게 전부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용감한 결정’을 한 SK텔레콤의 선택이고, 그 선택이 국내 통신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일 터다.

 SK텔레콤이 해외에 시선을 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미국에 이동통신 재판매사업자인 힐리오를 출범시켰는가 하면 베트남에도 거액을 투자했다. 기회가 닿으면 인도와 몽골 진출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다. 이런 결정들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요즘 국내 통신시장을 조금만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앞섰다던 한국의 통신시장은 이제 포화상태에 이를 만큼 이르렀다. 사업자들은 자는 새 코를 베일 만큼 급박한 상황에 예민해졌다. 유무선 경계가 없는 결합 상품은 하루가 머다하고 쏟아지는 판국이다.

 그렇다면 가입자 2000만에 묶여 있는 한국의 제1 이동통신사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뻔하다. 잘해야 본전인, 시장 지키기 게임이다. 이만저만한 고비용 저효율의 비즈니스가 아닐 수 없다.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는 문제다.

 어쨌거나 국내는 이제 SK텔레콤이 온전하게 존재하기에는 너무 좁아 터진 곳이다. 최 회장도 통신사업자가 생존하려면 최소한 1억명의 가입자는 보유해야 한다고 했다던가. 통신서비스가 아무리 내수산업이라지만 이 시점에서 SK텔레콤이 국내에 안주하는 것은 잠재력을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넘치는 생존 본능을 후발사업자들에만 겨냥하는 것은 국내 통신산업의 존립이나 발전에 좋은 일이 아니다.

 언젠가 김신배 사장은 SK텔레콤의 미국 진출을 축구대표팀의 ‘A매치’에 비유했다. 혼자만 살자는 게 아닌, 한국의 통신산업 저변 확대를 위한 선택이니 도와 달라는 뜻이었다. 중국은 그 살벌함이나 황량함이 미국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할 나라가 아니다. 과감하게 중국을 선택한 한국 대표선수 SK텔레콤의 ‘용감한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서현진 IT산업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