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게임물등급위원회 `長의 자격`

 게임 업계의 최대 현안인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등위) 구성이 순탄하게 진행될 것 같다. 적어도 최근 문화관광부가 공개한 ‘게임물등급위원회 추진 계획’에 따르면 말이다. 문화부는 내달 6일 공청회를 개최해 업계 등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물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봐야 알겠지만 유진룡 차관이 공개한 ‘게등위 추진 계획’은 그동안 업계가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잘 만들어진 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등위의 구성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10인 정도로 구성되는 등급위원회가 명실상부한 결정권을 갖는다. 물론 전문위원제도, 윤리위원회, 재등급분류위원회 등으로 이어지는 등급 분류 절차는 전문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겠지만 결국은 10인 위원회에 모든 것이 집중되는 구조다. 정책 당국인 문화부도 10인 위원회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자격 조건에서 게임 산업과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선임기준의 예시 7개 항을 나열하면서 ‘게임산업에 조예가 깊은자’ ‘게임과 관련해 전문 지식이 있는자’ 등과 같은 자격 조건을 명문화했다. 게임 산업을 알고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등급위원으로 뽑아 게임 등급 심의의 전문성을 살리겠다는 취지다. 업계로서는 ‘눈물 나게 고마운 대목’이다.

 10인 위원회의 전문성은 백번 강조해도 부족한만큼 돌다리도 두들겨 본 후 건너라고 말하고 싶다. 우선 문화부가 내놓은 7조의 겸직금지 조항이 자칫하면 위원회 구성을 위한 인력 풀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위원들이 게임 업계에 종사함으로써 특수한 이익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개연성을 피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조항대로라면 게임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일정 수준의 경비만을 지급받는 비상임위원으로 선출되는 즉시 그동안 게임 업계에서 갖고 있던 직업이나 직위를 모두 버려야 한다. “게등위 위원이 게임산업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것은 알지만 교통비 수준의 경비를 지원받는 자리 때문에 ‘게임 관련 업무에 5년 이상 종사한 경험 있는 사람’이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것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게등위 위원의 추천권을 갖고 있는 단체들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이야기할까 한다. 문화부 안에 따르면 각각 2인의 위원 후보 추천권을 갖고 있는 단체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국가청소년위원회, 한국게임산업개발원,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추천하는 단체, 법무부장관이 추천하는 단체, 한국언론재단 등을 예시하고 있다. 굳이 특정 단체나 기관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게임 산업이나 게임과 관련이 있는 문화 사회 단체 및 기관으로 범위를 좁히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자칫하면 사공이 많아 배가 산 위로 올라가는 사태를 막자는 뜻이다.

 여기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보자. 겸직 조항 때문에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비상임 위원에서 배제되고, 게임 산업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 위원장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만약에 그렇게 등급 위원회가 구성된다면 게임의 전문성을 살리겠다는 게등위 설립 취지는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다.

 물론 이것보다 더 나쁜 시나리오도 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낙하산 인사들이 위원회를 차지하고 정치권 인사나 문화부 퇴물(?)이 위원장을 차지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몇년 동안 그 난리를 치면서 어렵게 만들어 낸 게등위가 ‘누군가에게 한 자리를 마련해 주려는 쇼’가 돼 버린다.

 내달 6일 공청회가 끝나면 게등위 위원장 자리를 놓고 자천 타천으로 여러 후보가 물망에 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일부 발 빠른 자천 후보는 벌써 세 몰이에 나섰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그중에는 높은 양반을 등에 업었다는 예사롭지 않은 소문도 들린다. 문화부 계획대로 위원장 선임이 끝나는 9월까지 두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겠다.

 디지털문화부 이창희 부장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