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그래도 MS가 부럽다

 유럽집행위원회(EC)가 결국 세계 최대의 IT공룡 마이크로소프트(MS)에 철퇴를 내렸다.

 전 세계 IT업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강경파인 닐리 크뢰스 EC경쟁집행위원은 12일(현지시각) MS에 지난 2004년 유럽 내 반독점 행위에 대한 판결을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총 3억5730만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과징금을 매기고 이를 MS에 직접 통보했다. MS가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히고는 있지만 EC의 태도가 단호한만큼 큰 변수는 없을 것 같다.

 EC는 MS가 유럽 SW기업들에 △완전하고 정확한 상호 운용성 정보 제공 △합당한 조건으로 이 정보를 제공할 것 등을 요구해 왔다. 이를 통해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SW 및 IT산업의 다양성과 건강성을 살려 나가자는 의도를 밝힌 바 있다.

 이 초유의 사태를 보면서 세계 SW산업계에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온 ‘독점의 화신’ MS가 매 맞는다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다. 그것은 우리나라 SW산업계 종사자들이 겪었던 그대로 10년 전쯤 한창 상승세를 탔듯 여기저기서 SW벤처가 생겨나고 개화기를 만난 듯 성장의 기대감을 주었던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 한글과컴퓨터를 비롯해 워드프로세서 등 그룹웨어가 우후죽순처럼 나왔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남아 있는 SW기업이라고는 기껏 한글과컴퓨터 등 몇몇에 불과하다. 더러는 사라지고 부도나고, 잘나가는 기업이래야 1000억원 매출을 간신히 바라볼 정도다. 몇몇 개발력 있는 기업의 현주소를 보면 외국 유력 SW의 서드파티로 버티는 곳이 적지 않은 것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뒤늦게 정부가 다시 IT839를 통해 정책적 SW 진흥책을 부르짖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적 관심을 얻고 있는 MS를 우리와 비교해 말하는 것은 억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25년이라는 세월 동안 독점적 컴퓨터 운용체계(OS)인 윈도의 소스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유럽 내 SW기업 간 공정경쟁을 방해했다는 ‘반독점법 위반’ 혐의를 받으면서 그 엄청난 과징금을 낼 정도의 힘이 생겼다는 게 부럽다.

 반독점이란 따지고 보면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산업이 활발하게 일던 1880년대 미국에서 닥치는 대로 기업사냥을 하는 메기 같은 기업들의 M&A를 막고 산업의 건강성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된 ‘셔먼법’이 그 시초라는 데서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의 배경에서도 알 수 있듯 다양성 부재로 인해 한 기업에 모든 산업권력과 표준이 집중된다는 폐해를 말하는 것도 ‘결국 약자의 변’이라는 역설 역시 성립한다.

 우월적 위치에 서서 산업계를 지배하는 처지에서는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는가. 문제가 된 OS에 관한 한 MS는 거의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80년대 초 미국 DRI사의 제품을 베낀 MS DOS로 OS 분야를 평정한 MS는 유럽 PC 판매를 주름잡던 보비스 마이크로컴퓨터에 경쟁사 제품을 못 넣도록 회유, 결국 DR DOS를 시장에서 낙오시킨 경험도 있다.

 10여년 전 미국의 한 유망 중소SW 기업이 만든 압축파일을 MS DOS 6.0에 심었다가 1억3000만달러의 벌금을 문 경험이 있는 MS는 이제 2억8500만유로의 벌금을 내면서도 버티며 반독점 규제당국과 싸울 수도 있다.

 세계 최고의 IT 국가라는 우리나라의 세계 최저급 SW산업계 위상으로 세계 최고의 SW 공룡 MS와 감히 견줘보려는 것조차 언어도단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SW산업계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마음 깊이 부러움을 가져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독점을 뒤집어 보면 고스란히 당하는 측의 속 뒤짚히는 심정이 헤아려진다. 그래서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이번 반독점법 위반 과징금 조치를 받고도 당당하게 대응하는 SW 거인 같은 모델이 우리나라에서도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이재구 국제기획부장@전자신문,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