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와이브로를 위한 변명

와이브로가 우리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고 있다. 웃게 한 것은 엊그제 와이브로가 미국에 진출했다는 소식일 터다. 삼성전자가 미국의 통신사업자인 스프린트넥스텔 등을 움직여 차세대 통신서비스로 와이브로를 채택하게 한 것이다. 스프린트는 2008년께 선보일 4세대 통신서비스의 플랫폼으로 와이브로를 선택하기로 했다. 알다시피 와이브로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상용화한 차세대 통신기술이고 서비스다. 스프린트가 미국 전역에 와이브로망을 구축하게 되면 삼성전자는 엄청난 규모의 기지국 장비와 단말기 등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인텔이나 모토로라와 같은 장비 개발사들도 삼성전자의 기술(칩세트)을 이용하는 게 불가피해진다.

 우리를 울리는 것은 바로 그 와이브로가 국내에서는 아직 별 반응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서비스를 개시한 지 두 달이 가까워오지만 KT와 SK텔레콤 두 사업자가 확보한 국내 가입자는 모두 합쳐 1000명이 채 안 되는 모양이다. 사업자들은 이런 사실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당초 초기 반응이 신통치 않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란다. 올 연말까지는 시장 반응을 점검해 본다는 정도의 일정만 잡혀 있었다는 해명도 나온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안팎에서 적지 않게 혼란스러워할 수 있는 대목이다.

 와이브로에 대한 산업기대 효과는 흔히들 2세대 이동통신인 CDMA와 비교하곤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CDMA의 종주국은 우리가 아닌 미국(퀄컴)이다. 우리나라는 퀄컴의 기술을 로열티를 주고 들여와 상용 서비스로 만개시켰을 뿐이다. 이에 비해 와이브로는 기술과 서비스 모두 우리나라가 ‘종주국’으로서 지위를 갖는 확실한 재목감이다. 이런 가능성을 보여준 게 삼성전자와 스프린트의 제휴다.

 스프린트는 유무선을 아우르는 미국 최대 통신사업자 가운데 하나다. 이번 스프린트의 선택이 세계 시장에 미칠 파급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는 ‘한국의 퀄컴’이 아니라 ‘세계의 퀄컴’으로 우뚝 서게 된다. 그런 마당에 종주국에서 와이브로에 대한 반응이 신통치 않다는 얘기가 들려온다면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리는 격이 아닌가. 당장 스프린트 측에서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는 안 새랴’라며 삼성전자를 압박하게 될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이야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스프린트나 인텔이 그렇게 귀가 얇거나 섣부른 기업일 리가 없다. 지난해 말 부산 APEC회의 시범서비스에서 KT와 SK텔레콤의 상용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와이브로에 대한 모든 것을 지켜봐 왔을 터다. 만의 하나 일이 그릇되면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가 그들을 속인 격이 되니 이 역시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보면 헷갈릴 것도 의심할 것도 없다. 와이브로는 와이브로고 안팎에서는 여전히 차세대 통신플랫폼으로 높은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와이브로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의 차이가 생길 뿐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상용서비스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와이브로에 대한 분명한 포지셔닝이 없다는게 문제다. 반면에 스프린트는 처음부터 아예 4세대 통신서비스로 못을 박아버렸다. 와이브로를 2∼3세대 이동통신 혹은 유선 인터넷의 보완재쯤으로 본 KT와 SK텔레콤의 전략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차이는 각국의 현재 통신인프라 환경이 어떤지에 따라 결정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틈만 나면 와이브로 종주국임을 강조하는 우리 상황에서 보면 스프린트의 선택은 뭔가 진한 여운을 주는 대목이다. 문득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묘한 예감이 든다.

◆서현진 IT산업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