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레인콤다움으로 극복하라

 레인콤의 양덕준 사장. 그는 99년 모두가 부러워하는 삼성전자 이사 자리를 박차고 나와 창업을 했다. 2년쯤 지나 자리를 잡아가면서 점차 빛을 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적 디자이너 장인 김영세씨의 손길이 녹아든 ‘아이리버’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는 몇 년만에 사실상 국내 MP3P 업계를 평정했다. 디자인의 세계적 권위인 IDEA 은상도 탔다.

2003년 한 벤처 관련 행사에서 그를 만났다. 좀 검은 얼굴에 도시화됐으면서도 투박한 시골스러움이 묻어 나는 그와 함께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자리에서 벤처협회의 한 임원이 부회장 자리를 권했지만 그는 손사래를 쳤다. 사실 겨를을 내기 힘들었을 터다. 창업 4년 만에 4600억원에 10% 수준의 이익을 냈던 그였지만 지난해 국내에 진출한 미국 애플사의 ‘아이팟’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356억원의 적자를 내고 말았다. 지난 주 기자간담회서 밝힌 3분기 실적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레인콤의 위기가 사라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승승장구를 구가해 왔던 레인콤이 여기서 주저 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워크맨 10년 전성기 이후 대안을 찾아 위기를 극복한 ’소니의 성공’이 참고가 됐으면 한다.

10여 년간의 워크맨 신화가 끝난 소니는 ‘기껏 아이들 장난감’ 정도로 치부되던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를 통해 화려한 날개를 폈다. 그것은 소니의 오가 노리오 사장이 소니의 두 창업자 중 한사람인 이부카 마사루로부터 비행기에서 들을 수 있는 소형오디오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여 ’워크맨’이란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대영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유명한 그 제품도 추락과 영광을 겪으면서 소니를 불황의 늪으로 빠트렸다. 이를 극복, 소니를 다시 세계적인 전자업체로 끌어 올린 것이 바로 플레이스테이션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스티브 잡스가 바로 그다. 소니가 워크맨 열풍의 맥이 끊어진 자리를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이어 갔다면 잡스는 그 길을 첨단기술의 묘약으로 살려냈다. 그는 2001년 인터넷 음악사이트 아이튠스와 ’아이팟’이란 기기로 워크맨이 죽은 시장의 공백을 회춘시켰다.

그 아이팟보다 2년이나 앞선 99년에 아이리버라는 제품으로 소니의 워크맨 공백을 깬 레인콤이 안타깝게도 5년 만에 지친 모습이다. 최근 “아이팟에 신경쓰다 보니 아이리버가 아이리버다움을 잃었다”는 양사장의 지적이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아이팟의 짝퉁을 닮아가고 있다는 그의 얘기는 그런점에서 ‘준열한 자기고백’인 셈이다.

레인콤의 부진은 결국 CEO 양덕준의 지적처럼 ‘레인콤다움’ 또는 ‘아이리버다움’의 실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양 사장은 지난해 가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니나 삼성보다 애플이 더 무섭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말한 두려움의 대상은 아이튠스나 아이팟이 아닐 것이다. 아이튠스는 원래 관리하던 매킨토시와 SW 서비스의 확장이고 아이팟도 뜨내기 개발자의 휴대형 음악재생기와 전문 디자인의 결합일 뿐이다. 그것을 갈고 닦아 ‘잡스류’로 키운 것에 불과하다.

그가 천명한대로 흑자 전환을 위해선 우선 ‘두려운 애플’, 즉 스티브 잡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물론 잡스의 집요함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카리스마는 국제적이다. 하지만 기죽을 필요없다. 레인콤은 메디슨 이후 등장한 우리나라 디지털전자 벤처의 최대 성과다.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IT기술로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로 많은 중소 IT기업들에게 힘을 주었던 그다. 그가 보여준 성공한 창업 초기 열정과 발상의 전환을 기대한다. 그래서 ‘희대의 역전극’을 펼치기를 염원한다. 그런 점에서 성공한 레인콤의 첫번째 과제는 ‘자신감 회복’이 아닐까.

  이재구 국제기획부장 jklee@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