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수출의 조건

 올해 우리나라 수출 목표액은 3180억달러다. 9월 현재 수출액은 작년 대비 약 15% 증가한 2386억2300만달러. 목표의 75%를 넘어섰다. 수출물량이 보통 연말에 몰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도 목표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중 전자제품은 834억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3분의 1을 넘어섰다. 올해 수출목표는 1128억달러. 전자 수출 1000억달러는 지난 72년 1억달러 돌파 이후 32년, 76년 10억달러 돌파 이후 28년, 87년 100억달러 달성 이후 17년 만의 대기록이다. 전자산업이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임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처럼 수출은 호조를 보이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기업이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날씨만큼이나 차갑기만 하다. 수출 대부분이 대기업 몇몇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자산업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 전자 분야 수출기업 수는 지난 2004년 3363개에서 지난해에는 2466개, 올 상반기에는 1962개로 줄어들었다. 1년 반 동안 무려 절반 가까이 사라진 것이다. 매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수출강국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이다. 수출 저변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환율과 유가, 원자재가 상승 등 악재가 겹치면서 수출을 포기 또는 중단하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지만 한 편에서는 지금이라도 해외시장을 개척하려는 기업의 발걸음이 상대적으로 더욱 빨라지고 있다. 올해 들어 지역에 자리 잡은 중소기업 위주로 결성된 시장개척단이 부쩍 늘었다. 특히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에 올라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정보화가 더딘 동남아나 동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꾸려진 시장개척단이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비즈니스 상담회를 개최하고 있다는 게 현지 관계자의 이야기다. 보통 정부 산하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시장개척단에 참가하는 기업은 연간 매출 50억원 이하로 스스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기에는 버거운, 그야말로 영세한 기업이다. 비록 일정부분 정부 지원이 따르지만 비행기 삯이나 숙박비 등은 자체부담이기 때문에 적지 않은 돈이 소요된다. 시장개척단에 참가하는 이유에 대해 이들은 내수시장에서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돈이 좀 된다 싶으면 부나비처럼 수많은 업체가 뛰어들고, 이에 따른 출혈 저가경쟁으로 사업을 벌일수록 손해가 나는 악순환 고리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수출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들이는 만큼의 열정을 해외에 쏟는다면 적어도 사업을 유지해 나가는 데는 무리가 없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도 깔려 있다.

 1년 이상 준비해 하루에 적게는 두세 건, 많게는 20여 차례 현지기업과 상담을 벌이지만 당장 수출계약에까지 이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 번의 상담에서 1년 매출이 넘는 대형물량을 확보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상담장은 열기가 더해진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에서 시장개척단에 참가했지만 구체적인 결실을 얻는 데는 또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게 다반사다.

 수출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단순히 시장개척단 지원 등 수동적인 자세에서 지속적으로 시장·제품 정보를 제공하고 유망 거래처를 발굴, 국내 기업과 연결해주는 등 능동적인 자세로 탈바꿈해야 한다. 원하는 정보가 쌓여 있는데 왜 못 찾느냐고 일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술개발과 제품생산이 전부인 줄 아는 대부분의 중소기업에는 정보접근 자체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해외시장을 처음 노크하는 중소기업이 코트라 등 수출지원기관에 거는 기대는 예상 외로 크다. 수출지원기관을 사회간접자본으로 인식, 규모와 기능을 대대적으로 확충해야 하는 이유다. 사상 최고라는 수출지표만 보고 지금과 같은 대기업 위주의 수출구조를 타파하지 않는다면 ‘디지털강국 코리아’는 신기루다. 지금이라도 중소기업의 수출활로를 앞장서 활짝 열어줄 수 있는 더욱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

 

  양승욱 디지털산업부장·부국장대우@전자신문, sw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