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박양우 차관께

 “안녕하셨습니까? 박양우 차관님.”

 처음 뵌 것이 올해 2월께니 벌써 8개월여가 흘렀습니다. 당시에 저희 신문사 근처까지 찾아와서 문화산업국장으로서의 포부를 말씀하셨지요. 격식을 따지지 않는 넉넉한 자리였고 소탈함과 인간미를 진하게 느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정책홍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제가 한 번 광화문으로 찾아갔던 일을 기억하는지요. 문화관광부 인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보다는 조직 전체의 모양새를 걱정하는 맏형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차관으로 승진했을 때 직접 뵙고 축하드리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문화부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이어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지면서 차일피일 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 때문에 문화산업국은 물론이고, 문화부 전체가 흔들릴 때 저는 내심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박 차관이시면 이번 사태에서 문화부 조직과 게임산업을 온전히 지켜낼 거야’ 하는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바다이야기 사태가 한고비 넘어섰을 때 저는 ‘박 차관의 역할론’을 기대했었습니다. 딱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힘이 빠진 문화산업국에 활력을 불어 넣고, 게임산업을 사행성의 늪에서 건져 원래의 자리로 돌려 놓기 위해서 차관께서 먼저 움직일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10월이 되면서 기대는 초조감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나마 ‘10월 말에 발족하는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만큼은 뭔가를 보여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마침내 지난주 게임물등급위원회의 핵심인 위원 명단이 발표됐고 저는 번개를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제가 가장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위원으로 선임된 한분 한분에 대해 갑론을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명단에는 ‘바다이야기’의 망령이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게임은 사행성, 도박, 청소년 유해물 등과 동일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게임산업의 주무 부처인 문화부가 조각한 위원회 구성이라고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문화부는 게임산업을 육성하려는 생각을 포기한 것인가요, 아니면 생각은 있는데 그것을 관철할 의지가 부족한 것인가요.

 물론 이제 막 출범한 게임물등급위원회는 조금 더 두고 볼 필요는 있습니다. 산업 진흥 마인드가 강한 인사를 위원으로 추가 선임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세부적인 심의 기준이나 절차에서 산업계의 요구를 수용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닌만큼 문제는 문화부의 의지입니다.

 사행성 게임으로 낙인 찍힌 아케이드 게임 육성책도 마련해야 합니다. 게임장은 차치하더라도 연간 9000억원에 이르는 아케이드 게임기 제조산업의 기반은 그대로 말라 죽게 두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여기에 종사하는 인력과 산업 유발 효과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살려낼 방안을 연구해야 합니다.

 세계 최강인 온라인 게임에 대해서도 걱정은 많습니다. 온라인 게임의 사행성이나 아이템 거래에 대한 명확한 방침을 정해야 할 때입니다. 게임등위 이야기를 한다면 세계로 향하는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이 등급 심의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됩니다.

 이런 저런 각론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크게 본다면 게임을 규제의 대상으로 보느냐, 아니면 진흥해야 할 산업으로 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박 차관님, 저는 조금 더 기다릴 생각입니다. 문화부가 게임에 대한 애정과 육성 의지를 밝힐 수 있는 자리는 많습니다. 조금 있으면 게임 전시회인 지스타도 열리고 올 한 해를 결산하는 대한민국게임대상 행사도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 담긴 화답을 기다리겠습니다.

 이창희 디지털문화부장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