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진대제·김홍기의 선택

 그들이 뛴다. 우리나라 IT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그들이 ‘계급장’을 떼고 다시 뛴다.

 진대제와 김홍기. 두 사람은 우리나라 IT산업에서 수식어가 필요 없는 거물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후배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고 울타리가 돼주는 인물이다. 공통점도 많다. 삼성 사장 출신에 초년 고생이 심했다는 것이 닮았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것도 비슷하다. 진 장관이 몰아가는 유형이라면 김 사장은 기다려주는 타입이다.

 이력만 보면 두 사람 다 인생의 정점은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에이블 맨(able man)이라는 점도 닮았다. 특히 산업을 보는 통찰력이 뛰어나고 실행력도 갖췄다. 김홍기씨는 그 능력을 IT서비스(옛 SI)에서 보여줬고 진대제씨는 반도체업체 CEO를 거쳐 정보통신부 장관을 맡으며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들이 SW에서 만났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손으로 SW분야에서 글로벌 스타 기업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차이가 있다면 진 전 장관이 벤처 캐피털을 통한 간접지원을 택한 데 비해 김 사장은 아예 SW회사를 직접 운영해 승부를 내려 한다는 점이다.

 진 전 장관은 최근 정치와는 한발짝 거리를 두고 벤처투자사를 차렸다. 한달 전쯤에 ‘스카이레이크 인큐베스트’라는 회사를 설립해 대표이사를 맡았다. 장관 출신이 직접 회사를 차리고 승부를 거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보통 학교로 가든지 큰 회사 고문 정도의 직함을 갖고 활동하는 게 상례다. 그다운 자신감이 아니면 보기 힘든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세계 시장에 ‘들이댈’ 만한 SW가 나올 때가 됐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과감한 M&A를 통해 해외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SW기업을 만들어 보겠다고 자신한다. 선수가 선수를 알아본다고 해당기업의 옥석을 가리는 눈은 누구보다 정확하다는 게 자신감의 근거다. 그는 “벤처투자는 내 돈을 걸고 등에 식은땀이 날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현재 우리는 그런 것 같지 않다”고 질타한다. 벤처투자에 치열함이나 진정성이 없다는 말로 이해된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맘에 담아둬야 할 것이다.

 김홍기 사장은 지금이 더 바쁘다. 매출 2조원 규모에 6000∼7000명의 인원을 거느렸던 SDS 사장 시절보다 챙겨야 할 게 더 많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유토피아를 꿈꾼다. 현실성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SW기업이 정말 지향해야 할 모델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개별 SW기업 3∼4개를 합쳐 하나의 회사로 만들 생각을 갖고 있다. 개별적으로 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1등 회사들을 합쳐 하나의 사업부제로 운영하는 큰 회사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그동안 국내 SW업체의 최대 약점인 영세성을 극복하고 규모를 갖춰 글로벌시장에서 진정한 승부를 가려 보겠다는 포부다. 이미 이 계획은 상당 부분 진척돼 내년 초에 명실상부한 통합회사가 선보일 예정이다.

 협업문화가 부재한 우리나라에서 이 작업은 매우 의미가 크다. 국내 SW산업이 발전하려면 더욱 많은 M&A를 통해 특화되고 규모가 커져야 한다. 하지만 회사를 합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특히 1등끼리 뭉치기는 더욱 더 어렵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루어낸다면 절반의 성공은 담보한 셈이다.

 김홍기와 진대제. 국내 IT를 대표하는 두 거목이 SW에 다시 한번 승부를 걸었다. 덩치를 키워 해외시장에서 우뚝 서는 전문 SW기업을 만들어보겠다는 사명에 모든 것을 걸었다. 만약에 실패한다면 그동안 쌓아놓은 그들의 명성에 엄청난 흠집이 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그들은 일을 벌였다. 그만큼 글로벌 SW기업 육성은 미래 먹거리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고 해볼 만한 일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그들의 선택이 더 의미있고 신선해 보인다.

김경묵 편집국 부국장@전자신문, km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