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남용의 귀환

 남용 사장이 돌아왔다. LG텔레콤이 아니다. LG전자다. 30년 전 그에게 첫 월급을 준 직장이다.

 10년을 수출 역군으로 보냈다. 그러다가 경영 혁신가로 변신했다. 구자경 당시 그룹 회장의 부름을 받았다. 비전추진, 경영혁신본부 등 명함의 타이틀은 달라도 그가 하는 일은 딱 하나였다. 실적이 나쁘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계열사를 찾아가 원인을 따져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제시하는 일이다. 혁신은 당사자에게 고통이었다. 남용 당시 상무는 그래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다시 10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최고경영자(CEO)다. LG텔레콤 수장에 올랐다. 직접 경영하는 것과 경영을 진단하는 일은 다르다. 경영 진단을 잘한다고 경영을 잘하는 건 아니다. “직접 해보면 아마 쉽지 않을 걸?”이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다.

 초반에는 그랬다. 가입자가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과도한 투자의 후유증도 심각했다. 관계사들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시장 특유의 쏠림 현상은 꼴찌 사업자에게 너무 버거운 멍에였다. 남 사장은 혁신을 거듭했다. 사람도 열심히 키웠다. 미래에 대한 준비라기보다는 할 게 그것밖에 없었다. 몇 년 뒤에 결과가 나왔다. 뱅크온 서비스를 시작으로 LG텔레콤이 비약하기 시작했다.

 그때 LG카드 사태가 발생했다. 그룹의 관심은 온통 카드 문제에 쏠렸다. 통신사업은 관심 밖이었다. 되레 통신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정작 필요한 시기에 총알을 공급받지 못한 LG텔레콤은 몸으로 때웠다. 사생 결단으로 영업을 펼쳤다. 좋은 말로 ‘노이즈(noise) 마케팅’이지 사실은 생존 투쟁이었다.

 올해 LG텔레콤은 백조로 변했다. 여전히 꼴찌지만 요금제 등 시장 마케팅 이슈를 선점했다. 취임 때 190만이었던 가입자는 퇴임 때 680만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해볼 만하다’는 의욕이 텔레콤은 물론이고 통신 그룹과 전체 그룹으로 넘쳐 났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불행이 다가왔다. LG텔레콤은 도저히 투자를 할 수 없는 동기식 IMT2000 사업권을 반납했다. 사업 허가가 취소되면 대표이사는 물러나야 한다는 법 조항이 남 사장을 물러나게 했다. 그는 이를 알면서도 회사를 위해 사업권을 반납했다. 규제 당국조차 아까워 했다.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언젠가 새 역할을 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었다. 뜻밖에 그 시기가 빨리 왔다. 그에게 위기에 빠진 LG전자를 구하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정상 궤도로 진입하는듯 했던 휴대폰 사업이 글로벌 경쟁 격화와 환율로 다시 고꾸라졌다. ‘주의보’가 이제는 ‘경보’로 바뀌었다. LG전자를 쇄신하는 데 성공했던 김쌍수 부회장도 더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LG는 남용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다. 구본무 회장이 남용 부회장 내정자에게 바라는 건 혁신이다. 구 명예회장과 똑같은 요구다. 이제는 여유 있게 경륜을 펼칠 만한 위치인데 또다시 혁신이라니 얄궂다. 남 내정자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하지만 혁신은 그의 운명이다. 그는 조금의 여유 시간을 갖지 못하게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가 온다는 얘기가 나온 지난주부터 LG전자 임직원들은 초긴장했다. 하지만 기우다. 남 내정자는 과거를 생각할 틈이 없다. 오로지 관심사는 당면한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다.

 아무리 남 내정자라도 지금 혁신해 미래를 바꿔 놓겠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그렇지만 남 내정자에게는 LG텔레콤이라는 준거(레퍼런스)가 있다.

 그에게 기대를 거는 건 LG 사람들만은 아니다. LG전자와 운명을 같이하는 협력업체들은 물론이고 팬택 사태로 위기감이 고조된 휴대폰 업체도 남 내정자가 LG전자를 멋지게 탈바꿈시켜주기를 바란다. ‘돌아온 남용’에게 거는 기대인 것이다.

신화수 u미디어팀장@전자신문, hsshin@